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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미실의 최후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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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다함을 잃고 잠시 실의에 빠져있던 미실은 설원랑(전노민 분)을 만나게 됩니다.

 설원랑은 사다함, 토함공과 더불어 동모이부(同母異父)관계로 미실은 설원랑을 통해 사담함을 추억할 수 있어 그를 가까이 두었으며 결국 연정으로까지 확대되면서 16대 풍월주가 되는 보종공까지 낳게되죠.

 진흥왕대에 미실이 원화를 다시 부활시키자, 세종을 상선, 문노를 아선, 설원랑과 비보랑을 좌 ,우봉사화랑으로, 미생을 전방봉사화랑으로 삼았는데 동륜태자의 죽음으로 미실이 원화를 그만두게 되자. 세종이 다시 풍월주가 되었고 미실은 세종에게 같이 정계일선에서 물러나기 청하였습니다. 이에 세종은 설원랑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넘겨주고 미실과 더불어 여생을 보냅니다.


 낭도들은 설원랑을 가문이 한미하다는 이유로 잘 따르지 않아 잦은 잡음을 내고있었는데요. 미실의 도움으로 이 문제는 일시적으로 가라앉게 할 수 있었지만 이는 얼마지나지 않아 문노파와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설원랑과 문노의 재주를 저울질을 한 미실은 문노 쪽이 뛰어남을 알고 문노를 선도(仙道)의 스승으로 삼는 다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 이면에는 미실의 고단수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었습니다. 문노를 스승으로 삼자, 설원랑과 미생 등에게 문노를 스승으로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설원랑이 복종하자. 문노의 도 또한 설원에게 복종하였으며 미실이 풍월주의 지위를 문노에게 넘겨주기를 명하게 됩니다.

 여기서 미실의 정치력이 발휘되는데요. 화랑의 법에는 후계자가 전주(殿主)에게 하배를 올리고 칭신(稱臣)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이 법도를 따라 문노는 설원랑에게 칭신하지 않을 수 없었죠. 미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생각하여 문노를 스승으로 그리고 풍월주로 삼게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설원랑을 위하여 미실이 움직여 주고 그 후광으로 설원랑은 세종의 뒤를 이어 7대 풍월주까지 올랐으니 미실에 대한 설원랑의 충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설원랑은 미실의 정부이자 후견인이 었으며 미실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였던 것이죠.

 진평왕 28년(서기 606년) 미실이 병에 걸리자 설원랑은 슬퍼하며 밤낮없이 그녀를 간호하다 미실보다 먼저 세상를 뜨고 마는데요. 설원랑이 죽자 미실은 자기 속옷을 넣어 함께 장사지내며 “나도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로 갈 것이다” 라며 슬퍼하다 미실도 죽음을 맞습니다.

설원랑은 58세로 사망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미실의 나이 60세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40여년간 신라의 조정을 맘대로 휘둘렀던 여장부 미실의 시대는 끝이난 것이죠. <어떤오후>

[출처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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