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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잡학/역사

미국 대통령의 피부색은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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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노예로서 버지니아에 처음 도착한 흑인, 1776년 미국 건국 당시 전체 인구의 19%(현재는 12%)에 달했던 이들은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1863년)이 있던 당시에도 남부지역 신문광고엔 흑인 노예, '니그로' 를 사고팔겠다는 광고가 버젓이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은 100년이 지나도 선언에 불과했으며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지해야만 했던 남부지방의 인종차별은 날로 극심해져 백인이 출입하는 학교, 병원 등 공공장소에서 흑인은 얼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 남부의 차별을 피해 흑인들은 대규모로 북부와 서부로 이동하는, 이른바 '대이주(the Great Migration)' 현상이 있었으며, 앞서 언급한 학교, 병원 등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하는 소위 '짐 크로(Jim Crow) 법'은 1954년 대법원 판결로 없어질 때까지 남부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1950~1960년대에 등장한 흑인 인권 운동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뿌리깊이 박혀있던 인종차별의 그림자는 아주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발단이 된 사건이 바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입니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은 1955년 12월 1일 파크스(Rosa Parks)라는 흑인 할머니가 시내버스의 백인 좌석에 앉았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시내버스에서 흑백 분리'를 규정한 몽고메리 시법(市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면서 시작된 집단 파업과 버스승차거부 등의 비폭력 시위를 말하며 이 투쟁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King, Martin Luther, 1929∼1968) 목사입니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은 1963년 흑인 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날 명연설을 하는데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제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유명한 연설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고 흑백 혼혈아로 태어나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당시 두 살밖에 되지 않았던 한 남자 아이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이 있은 후 45년 뒤인 2008년 8월, 같은 장소에서 이 아이는 그가 존경했던 킹 목사에 이어 또 한 번 세계를 감동시킬 명연설을 하게 되는데요.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선 후보가 된 민주당 버락 오바마 (1961~) 의원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이었습니다.

"45년 전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젊은 목사의 꿈을 들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뒤 미국인은 이 젊은 흑인을 자신의 지도자로 받아들였으며 흑인들의 꿈이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되어버린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로 미국에서 대통령의 피부색깔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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