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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미실의 몰락 정말 김춘추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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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12일 방송분에서는 김춘추(유승호 분)가 '골품제도'를 비판하며 왕권 투쟁에 나선 후 갑자기 염종을 시켜 보종의 딸인 보량을 납치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진평왕(조민기 분) 앞에 보량과 함께 나타나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며 "보량을 궁궐로 들이겠다."고 선언하는데요.



 이 일로 인해 미실을 중심으로 견고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세종의 세력과 설원랑의 세력이 대립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유신이 걱정한 두 번째 경우인 김용춘, 설원랑, 김춘추 3자 연대의 초석으로 결국 미실(고현정 분)을 역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져 시청자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실의 좌청룡우백호였던 세종과 설원랑의 대립이 시작되고 이것이 결국 미실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실의 최후가 임박했다는 것이지요.



드라마의 소재가 된 화랑세기에서 미실의 최후는 우리의 예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공(설원랑)은 건원建元 14년(549)에 나서 건복建福 23년(606) 7월에 죽었다.

그때 미실궁주가 이상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일어나지 못하였다. 공이 밤낮으로 옆에서 모셨다.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에는 반드시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였다. 미실이 일어나서 슬퍼하여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내며, “나도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하였다. 그 때 나이가 58세였다.
[화랑세기 7세 풍월주 설화랑 편中]

  병에 걸린 미실을 성심으로 간호하다 설원랑이 먼저 죽자 이를 슬퍼하다 미실 또한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으니 드라마에서 풍기는 냉혹한 미실의 성품과는 완전히 다른 순애보의 주인공처럼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2009/07/01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미실의 최후는 어땠을까?


 사실 김춘추가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을 역이용하는 것은 적어도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춘추와 미실은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춘추는 604(진평왕 25년)년에 태어났습니다.  632년에 진평왕이 죽고 덕만이 여왕이 되는데요. 이 당시 고구려,백제의 경우 왕에게 아들이 없으면 왕족 중 유력 인사가 왕이 되었지만 신라의 경우 성골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었기에 유일한 성골이었던 덕만이 여자였지만 선덕여왕이 된 것이죠.

 그러나 선덕여왕 역시 성골을 만들기 위해 용춘과 용수와 모두 관계했음에도 아들을 낳지 못해 사촌 동생인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만 진덕여왕 역시 후사가 없었으므로 김춘추에게 왕위는 넘어오게 되니 그가 바로 태종무열왕이 됩니다. 

 결국, 위에 소개한 화랑세기처럼 설원랑이 606년에, 그 비슷한 시기에 미실이 사망하였으니 604년에 태어난 김춘추가 걸음마도 떼기 전에 두 사람의 시대는 끝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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