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속 역사이야기
2008. 5. 20.
[이산]정약용에게 내린 숙제! 정조가 한강을 건너야 했던 이유는?
영조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 죽은 아들에게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렸으며, 1777년 그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올라 장헌(莊獻)으로 추존하고, 사당을 경모궁, 묘(墓)를 영우원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정조는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던 묘를 수원으로 옮겨 영우원을 현륭원(顯隆園)이라 고쳤고 정조 9년(1785) 능행(陵幸 : 임금이 능에 거둥함)을 단행하는데요. 정조의 능행(陵幸)은 단순한 효(孝)의 의미가 아닌 능행을 통해 먼저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얻으려 했던 거 같습니다. 또한, 능행이란 형식을 통해 상공업 발달로 사회 변동이 활발하던 수도권을 직접 방문, 사대부와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갈등과 분쟁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