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속 역사이야기
2008. 5. 23.
[이산]정조가 선발한 무사 2,000명의 용도는?
얼마 전 정조의 친위부대였던 숙위소(宿衛所)와 장용영(壯勇營)에 대해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장용영의 전신인 장용위(壯勇衛)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 포스트는 문답식으로 꾸며봅니다. ☞ 질문 1) 무과를 통해 2,000명의 대규모 인원을 선발한 이유는? 정조는 1785년(정조 9년) 그의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존호(尊號)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바꾸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경과(慶科: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이를 기념하고자 보이던 과거)를 보여 무과(武科)에서 무려 2,000명을 합격시킵니다. 이는 장헌세자를 추모한다는 뜻도 있겠지마는 상대적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초석을 만들기 위함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데요. 이듬해 2월 홍복영(洪福榮)의 역모사건이 일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