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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천추태후]경종이 부른 최지몽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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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방영된 "천추태후"에서 경종은 갓 태어난 태자의 안위를 염려해 태조 왕건 이래로 고려 왕실의 수호자였던 최지몽(전승환 분)을 불러들이는 데요. 드라마와는 달리 최지몽은 천추태후의 오빠인 왕치(후에 성종)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처럼 따르던 인물로 후에 왕치가 왕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전남 영암지방의 호족인 원보(元甫) 최상흔(崔相昕)의 아들로서 최지몽(崔知夢)의 본명은 총진(聰進)입니다. 청렴하고 성품이 온화하였며 총명하여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겨 고려 초 대학자인 대광(大匡) 현일(玄一)에게 사사를 하여 경서와 사서를 널리 섭렵했으며 더욱이 천문과 역술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18세에 태조(왕건)가 그 명성을 듣고 불러 꿈을 해석게  했더니 반드시 삼한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여 태조는 이에 크게 기뻐하며 지몽으로 이름을 고치게 하고 비단옷을 내리고 공봉(供奉)으로 임명하여 관직에 등용되어 81세에 임종 때까지 여섯 왕을 거치며 관직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KBS "태조 왕건"의 최지몽


 
 항상 왕을 따라 종군해 그 옆을 떠나지 않았으며 삼한을 통일한 후에 궁중에 입시해 왕의 자문을 맡았습니다. 혜종 2년에 왕규(王規)가 왕의 아우를 모함하려 할 때 최지몽은 사천관(司天官)으로 있으며 왕에게 "류성이 자미를 범 했으니 나라에 필시 역적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여 혜종으로 하여금 방비케 하였으며 후에 혜종이 병에 걸려 신덕전에 누워있고 왕규가 모반하려 할 때도 최지몽이 점을 쳐 보고 근자에 변이 있을 터이니 수시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 하여 변을 모면케 했다고 합니다. 혜종의 병사 후에도에도 사천관으로 있던 최지몽은 왕규의 역모혐의를 고변하여 정종과 광종의 즉위에 큰 기여를 하게됩니다.

사천관(司天官) : 고려시대에 천문(天文)·역수(曆數)·측후(測候)·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았던 서운관(書雲觀)에서 근무하던 관리 

 
  하지만, 광종(경종의 아버지)때 왕을 따라 귀법사에 갔을 때 술에 취해 왕에게 술주정을 한 죄로 좌천되어 외지에서 11년을 지내는데요. 사실 왕에게 술주정한 일은 대역죄로 다스려도 충분한 일이었으나 귀양이 아닌 좌천으로 일단락된 것은 그가 단순한 군사력이나 파벌을 이루어 세를 규합하거나 작당을 했던 인물이 아니라 역술과 천문을 포함한 높은 학문의 힘과 평소 청렴하고 온화한 인품으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결과였던 것이죠.

 사실 드라마에서처럼 경종의 괴팍한 행각은 5년여의 즉위 기간 중 병으로 죽기 1,2년 전으로 그 이전엔 전시과(田柴科)를 제정하여 고려의 토지제도의 시초를 마련하는 등의 치적을 남기는 등 정사에도 힘을 썼던 왕이었습니다. 이 당시 고려로 밀려온 발해 유민 수만 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으로 봐도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수법으로 혼란스러웠던 즉위 초 이를 시행했던 왕선의 제거로 한동안 안정되었던 고려의 평화는 최지몽(崔知夢)에 의해 깨지는데요. 경종 5년에 다시 중앙으로 소환된 최지몽은 대광(大匡), 내의령(內議令)이 봉직을 받습니다.  대광으로 왕명을 다루는 내의령을 겸직하게 된 최지몽은 조정의 실세로 등장한 후 곧장 왕승 등이 반란을 꾀하는 것을 고변하여 경종의 신뢰를 다시 한번 받게 됩니다.

 경종 즉위 후 그동안 왕권에 눌려있던 호족들의 도전이 다시 시작되었고 최지몽은 이 들 중 왕의 최대 정적이었던 왕승을 최대정적을 제거해줌으로써 오랜 좌천생활 이후 또 한 번 자신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으며 경종 또한 최지몽의 이런 능력을 정적제거에 적절하게 이용했던 것입니다.

최지몽에 대한 왕실의 신임은 경종이 후 왕이된 성종(천추태후의 오빠)대에도 지속하였습니다. 성종은 최지몽에게 홍문숭화치리공신(弘文崇化致理功臣)의 칭호를 내려 주었으며 그 부모에게까지 벼슬을 주었습니다.
 
 또한, 성종 3년 최지몽의 나이가 78세로 연로하여 사직하길 청했으나 윤허치 않았으며 조회에 참석은 그만두고 내사방에 나가서 그전대로 일을 보도록 명하였다 합니다. 성종 6년에 최지몽이 병으로 눕자 의원에 명해 약을 주며 친히 그 집에 가서 문병하고 말 두 필을 귀법사와 해안사에 희사해 중 3천 명에게 밥 먹이며 기도케 하는 등 그의 회복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최지몽은 81세로 사망합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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