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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미실의 첫사랑 사다함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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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다함은 구리지공과 금진낭주의 아들로 사다함의 형제로는 토함공과 새달 그리고 동모이부인 설원랑(전노민 분)이 있었습니다. 사다함의 어미인 금진낭주는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은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먼저 금진은 옥진과 더불어 법흥을 섬기나 자식이 없자 물러나 살고 있을 때 구리지가 금진에게 다가왔습니다.

 구리지와 관계를 맺은 금진은 사다함, 토함공, 새달을 낳았으며, 구리지의 측근 중  설성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구리지가 전쟁이 참가한 틈을 타 설성과 관계를 맺었는데 이로 인해 설원랑(전노민)이 태어납니다.

 사다함은 덕이 많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으니 4대 풍월주인 이화랑은 사다함을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에게 천거하였습니다.


 561년 가야국내에서 영토분쟁이 일어나자 사다함은 태종에게 선봉에 설 수 있게 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당합니다. 하지만 사다함은 몰래 가야국으로 가서 내분을 정리하고 돌아옵니다.이에 진흥왕이 공을 기려 많은 땅과 포로들을 주었으나. 사다함은 땅은 아랫사람에게, 포로는 양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사다함을 아끼던 이화랑은 사다함을 5대 풍월주로 삼고, 설원랑을 부제로 삼았습니다.

 미실과 사다함은 연인관계였지만 사다함이 가야정벌을 간 사이 지소 태후(진흥왕의 어머니)가 미녀들을 궁중에 모아놓고 아들 세종 전군(殿君·왕이나 태후의 아들, 독고영재 분)에게 부인을 고르라고 했을 때 세종이 미실을 선택하여 미실은 세종의 아내가 됩니다. 미실이 사랑보다는 야망을 선택하지만 사다함이 미실을 연모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미실에게 버림 받은 충격이 체 가시기도 전에 사다함은 또한 번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데 바로 절친했던 무관랑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다함의 덕망이 온 천하에 알려질때 무관랑 또한 그의 됨됨이에 반하여 사다함을 찾아가 귀의하게 됩니다. 이 후 수많은 전쟁에서 사다함과 함께 공을 세우지만 신분이 미천했던 무관랑은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무관랑은 서서히 타락의 길로 빠지는데요.

 바로 사다함의 어미인 금진낭주 유혹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금진은 무관랑을 몰래 불러 들여 그와 사통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금진의 유혹에 좀 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던 무관랑은 사다함을 제대로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다함은 이사실을 알고도 무관랑에게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았으니 이에 부담을 느낀 무관랑은 결국 도망을 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밤에 밤에 담장(월성의 궁장)을 넘다가 구지(월성해자)에 빠져 심하게 다치고 마는데 그 부상이 심각한 나머지 얼마후 죽게됩니다.

 어릴 때 무관랑(武官郞)과 우정을 맺어 죽음을 같이 하기로 했는데, 무관랑이 이처럼 허무하게 죽자 사다함도 7일 동안 통곡하다가 17세에 죽고 맙니다.

하지만 화랑세기에서는 연인인 미실의 배반으로 상사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마도 사다함의 죽음은 앞서 언급한 무관랑의 죽음과 미실에게 버림받은 추스리기 힘든 두가지 사건의 충격으로 죽었다 판단됩니다. <어떤오후>

[출처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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