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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문노의 잘못된 만남, 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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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에서는 자신의 스승인 문노(정호빈 분)가 숨겨둔 삼한지세를 찾기 위해 스승을 뒤를 밟는 비담의 모습이 방영되었는데요. 

 결국 비담은 문도가 도박장에서 누군가를 만나  삼한지세의 주인은 비담이 아니라 김유신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문노를 찾아온 이는 바로 염종(廉宗)이라는 사람으로 또 한번 작가의 치밀한 상상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문노와 염종의 밀접한 관계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니며 드라마 설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노는 자신의 평생숙원인 삼한지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염종에게 배신을 당하는데요. 과연 문노에게 치명타를 날릴 염종은 누구일까요?

먼저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에 잠깐 언급된 염종의 기록을 알아봅니다.

 그 때 국사國事가 점차 어려워졌다. 공과 여러 낭두들이 낭도를 거느리고 친히 활 쏘고 말 달리는 것을 익혔는데, 모인 자들을 선발하여 병부에 보충하였다.270) 공이 5년간 풍월주의 지위에 있는 사이에 낭정은 무사武事로 많이 돌아갔다. 선덕제의 병이 몹시 위독해지자, 비담과 염종(廉宗)이 모반을 하였다. 유신공이 신주新主272)를 받들어 전쟁을 독려하였다. 그 때 서울京師의 군대가 적어 공이 낭도를 모두 동원하여 먼저 그 진으로 돌격하였다. 비담이 패하여 달아나고 난이 평정되었다. 공은 그 공功을 발탁되어 호성장군護城將軍이 되었다. <화랑세기 24세 풍월주 천광공 편>

16년 봄 정월, 비담.염종 등은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 하여 반역을 도모하고 병력으로 대궐을 쳤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8일 왕이 죽으니 시호를 선덕이라 하고 낭산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제 5, 선덕왕편>


 비담이 상대등이 되기 2년 전인 643년 당태종(이세민)은 신라에게 다소 충격적인 제안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여왕을 폐위하고 남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당태종의 제안에 신라 조정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극심한 의견대립이 생기고 마는데 비담은 여왕폐위를 찬성하는 쪽의 주요 인사였습니다.

 이즈음 백제의 침공을 박아내지 못하고 대야성(지금의 합천)의 빼앗겨 그 세력이 위축된 김춘추와 김유신을 누르고 비담이 상대등에 오르게 되면서 비담의 여왕 폐위 작업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미담의 선택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렸었는데요. 바로 왕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당시 신라에는 성골출신의 남자가 없던 터라 여왕이 죽으면 진골 출신의 최고 자리에 있던 비담이 신라의 왕이 될 확률이 가장 높았던 것이죠. 이러한 때에 당태종의 여왕폐위 발언은 그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비담을 중신으로 한 여왕폐위파가 조정을 장악한 지 얼마후 인  647년1월(선덕여왕 16년) '여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을 업신여기는 풍조 때문에 이웃나라가 자주 쳐들어온다'라는 당태종의 말을 명분으로 비담이 군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역사는 이를 '비담의 난'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때 비담과 함께 반란에 동참했던 주역 중의 한명이 염종(廉宗)인 것이죠.

 국선 문노가 덕만과 유신의 사람됨을 가늠할때 가장 큰 잣대였던 인리(人理: 하늘에서 내린 인덕), 안타깝게도 하늘이 문노에게는 인리(人理)를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오후>

- 용어 해석 : daum, naver 백과 사전
[내용 출처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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