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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대야성은 정말 백제에 함락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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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영까지 단 10회만 남겨둔 MBC 월화드라마 ' 선덕여왕' 24일 방송분에서는 유배를 간 유신이 선덕여왕의 명을 받고 백제군영에 들어가 백제가 대야성(지금의 합천)을 함락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대야성(大耶城)은 백제와의 접경지대인 신라 서부의 군사 요충지로서 삼국 간의 항쟁이 격화되던 7세기에는 신라의 대백제방어에서 최전선 역할을 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 시절 실제로 대야성은 백제에 함락당했을까요?

 632년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뒤를 이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선덕여왕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변국인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이 잦았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백제와 신라 간의 대립은 그야말로 극한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요. 이런 극한 대립의 정점이 바로 김유신의 가잠성(지금의 거창) 공격이었습니다. 백제의 동쪽 요충지인 가잠성을 김유신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공격하지만 번번이 공격은 실패합니다. 가잠성에는 계백장군이 성주로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월등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김유신의 계속된 공격에 계백장군의 가잠성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계백장군을 구하기 위해 백제의 의자왕은 윤충에게 신라의 군사 요충지인 대양성을 공격하게 하는데요.

 대야성을 공격하기 위해 백제가 먼저 한 일은 고구려와 모의하여 당항성(경기도 화성)을 빼앗음으로써 나당(羅唐)의 통로를 끊게 한 것입니다. 당나라의 역공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백제는 642년 8월 윤충의 지휘로 대야성에 진입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의 수로를 차단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대야성이 성안에 있던 백제가 심어 둔 간자의 활약으로 점령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실제로는 당시 대야성의 성주인 김품석이라는 인물의 타락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이는 몇 년 전에 방영된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도 다룬 내용이라 많은 분이 아실 텐데요.

 대야성의 성주 김품석은 수성만 하고 있을 뿐 감히 성문을 열고 나아가 백제군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다 결국 백제군에 의해 포위되고 맙니다. 외부로부터 보급품이 완전히 차단되자 성 안에 있는 신라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마는데요.

 이때 성주인 김품석의 심복 검일의 배반으로 대야성은 함락되고 맙니다. 검일이 김품석을 배반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내를 김품석이 빼앗았기 때문인데요. 이에 앙심을 품은 검일은 대야성 내에 있는 곡물창고에 불을 질렀으며 이 사건으로 병사들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항복하자는 소리가 나오자 김품석은 동요하게 됩니다.

 마침내 성주 김품석은 백제와의 휴전에 동의하고 성문을 열어주지만, 백제의 윤충은 약속을 어기고 항복하러 나온 신라군을 학살하고 마는데요. 이에 죄책감을 느낀 김품석은 아내와 함께 자살을 합니다. (여기서 김품석은 놀랍게도 김춘추의 사위입니다.)

 대야성이 함락되자 위기를 느낀 선덕여왕은 압량(지금의 경산)에 압량주를 만들고 그곳의 군주로 김유신을 명합니다. 김유신은 수년에 걸쳐 대야성에 포진해있던 백제를 효율적으로 견제를 하게 됩니다.

 한편, 김춘추는 고구려와 일본으로 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실패합니다. 하지만, 당 태종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하여 20만 군사를 지원받아 648년(진덕여왕 2)년 대야성을 빼앗긴 지 6년 만에 다시 탈환하게 됩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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