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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비담의 난은 귀족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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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 12/8 방영분에서  선덕여왕은 사량부의 수장이던 비담을 상대등의 자리에 앉힘과 동시에 비담에게 편제돼 있는 사병을 병부에 귀속시키라고 명령합니다. 사랑과 권력의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은 셈이었죠.

그 전에 앞서 비담은 '선덕여왕 사후에는 일체 조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맹약을 선덕여왕에게 바쳤습니다.

 하지만, 비담에게 편제돼 있는 사병을 병부에 귀속하라는 선덕여왕의 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염종이 우연하게 비담과 덕만사이에 맹약이 오간 것을 알게 되고 미생(정웅인 분)과 하종(김정현 분)과 함께 계략을 꾸미고 맙니다.

 바로 당나라 사신을 이용하는 것인데요. 당나라 사신은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신국이 자주 침략을 당하는 것은 여자가 왕이기 때문"이라며 남자로 왕을 세울 것을 주장하는데요.

자신의 세력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진 비담은 결국 '비담의 난'을 통해 이 위기를 모면하면서 왕위를 침탈하려는 계획을 세울거 같습니다.

신라는 중고기(中古期:법흥왕~진덕여왕)에 들어가면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정치사회이념으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습니다.

 특히 선덕여왕 이후는 귀족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와, 가야 멸망 이후 신라의 새로운 김씨로 포섭된 가야왕실의 후손 김유신이 손을 잡고 이러한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갔는데요.

 이에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하게 된 귀족은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없었는데, 이것이 대대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귀족의 대표인 상대등이 중심이 된 '비담의 난'인 것이죠.

따라서 '비담의 난'은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정책속에서 그 입지가 좁아진 귀족들의 반란인 것입니다.

  비담을 중심으로 한 반란군은 김유신이 이끄는 진압군에게 대패하고 비담은 잡혀 처형당했으며 비담을 포함한 가담자의 9족을 멸하는 극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사이 선덕여왕은 원인 모를 이유로 죽고 말았으며 선덕의 뒤를 이어 유일한 성골이었던 그녀의 사촌인 승만공주가 왕이 되니 그녀가 바로 진덕여왕입니다.

 비담의 난을 성공적으로 제압한 김춘추와 김유신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이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체제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으며 훗날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함으로써 중앙집권체제는 더욱 견고하게 됩니다. <어떤오후>

[참고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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