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동이와 숙종, 그 찬란했던 사랑!

반응형
 10일 방송된 MBC 월화 드라마 '동이'에서 숙종은 청나라 태감이 청나라의 사신을 자살로 죽게 한 동이를 청으로 압송하려 하자 전쟁의 위험에도 동이를 보낼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를 본 희빈 장 씨(이소연 분)는 숙종의 마음이 점점 동이에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며 숙종-동이-희빈 장씨의 본격적인 삼각관계는 다음 회를 기대하게 하는데요.

 숙빈 최씨는 미천한 출생으로 그녀에 대한 기록은 숙종에 의해 후궁이 되면서부터 확인되고 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천한 신분을 반증하는 자료 또한 없으나 그저 무수리(상궁과 나인의 하인)로 지냈다는 구전이 거의 일반화된 사실로 전해져 올뿐이죠.

 하지만, 숙종이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시킨 지 6년이 지난 어느 날 궁궐을 거닐다가 불 켜진 한 궁녀의 방에서 폐비 민씨를 모셨던 무수리를 발견하고 감동을 합니다. 이를 인연으로 성은을 입게 되고, 곧이어 숙원·숙의·귀인을 거쳐 숙빈 이라는 정1품의 빈까지 오르게 되니 그녀가 숙빈최씨(동이)인 것이죠. (동이는 드라마에서 설정한 가명입니다.)



 궁궐에서 여인들이 많다고 하나 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대신들의 자제들인 것을 고려해보면 상궁이나 나인이 아닌 무수리가 왕의 승은을 입게 되는 오늘날 로또 1등 당첨의 확률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장옥정도 출신이 미천하긴 하나 그녀는 서인 세력을 견제했던 남인의 계획으로 숙종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니 조금은 다른 경우입니다.

 아무튼, 숙빈 최씨가 무수리로서 왕의 승은을 받은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많은 흔 경우의 궁녀들이 성은을 받고 후궁까지 되었으나 이후에 왕에게서 멀어져 단지 후궁의 생을 외로이 살다간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숙빈최씨를 향한 숙종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숙빈 최씨는 왕비에 오르지는 못하였으나 속종에게서는 왕비의 지위를 초월하는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총애는 숙빈이 숙빈이 영잉군(훗날 영조)을 출산하자 극에 달했는데요. 숙종은 영잉군의 탄생을 크게 기뻐하며 호산청(護産廳, 왕비 미만의 후궁들이 출산할 때 출산을 돕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의 관계자들을 푸짐하게 포상하게 되는데 여기에 내구마(조선 시대에, 내사복시에서 기르던 말. 임금이 거둥할 때에 쓴다)를 하사합니다.

 물론, 왕자를 생산함에 있어 산모와 아기를 잘 보존함에 따른 포상은 당연하나 내구마까지 포함된 포상의 범위와 액수는 지나침에
많은 관료가 이를 막았지만, 숙종의 결단을 꺽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영잉군(훗날 영조)이 진사 서종제의 딸과 혼인 시 그 사치는 실록에 기재될 만큼 도를 넘었으며, 후궁의 소생에 지나지 않는 영조의 가례가 세자의 가례를 초월할 정도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것은 당장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틀림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때 이미 원자에 이어 세자로 책봉된 장희빈 소생인 왕자(경종)이 있는 상황에서 숙빈최씨의 자식에 대한 예우를
그리했던 것은 그만큼 그녀에 대한 일관적인 숙종의 사랑을 반증하는 것이죠.

 숙종이 노론·소론의 당쟁을 이용하여 양 난 이래 손상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수차례의 환국으로 조정을 피로 물들인 인물이었으며, 왕비인 인현왕후를 매몰차게 내치고 왕비로 삼은 장희빈마저 나중에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정도로 잔혹하고 냉철한 인물임을 생각해보면 속종이 숙빈 최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한 번 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오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