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동이, 영조는 정말 천재였을까?

반응형
 30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동이'에서는 궁궐로 연잉군(훗날 영조)의 천재성이 숙종과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입증되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사실, 동이는 궁궐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런 연잉군의 천재성을 숨기려 했죠. 세자가 있는 마당에 또 다른 왕자의 영민함이 자칫 또 다른 정쟁의 불씨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데요. 이런 연잉군에게 동이는 남들 앞에서 자신의 영특함을 숨겨야 한다 당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옥정(이소연 분)의 계략으로 세자의 책례와 연잉군의 서도가 함께 진행됩니다. 이는 세자와 연잉군을 비교해 세자의 영특함을 과시하려는 음모였죠. 당연히 동이는 연잉군에게 절대 소학을 암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당부하게 되는데요.

 서도에서 연잉군이 동의 요청대로 학문에 관심이 없어 보이려 연기하지만 중신들이 동이의 신분을 내세워 연잉군의 부족함을 질타합니다. 이에 화가 난 연잉군은 숙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학을 암송하고 이는 궁궐에 파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세자의 경우처럼 왕자들은 이른바 영재교육을 통해 왕재가 되기 위한 길고 긴 수행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재교육은 태교를 시작으로 왕자가 태어난 후 3살부터는 정식 교육을 통해 차근차근 학문과 예의를 연마하는 것이죠.

  영재교육의 효과는 세종, 문종,(세종의아들) 세조, 성종(세조의 손자), 광해군, 영조, 정조(영조의 손자)등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됩니다. 특히 영조에서 정조시대는 조선 최고의 중흥기라 할 만큼 이들의 뛰어난 자질은 두각을 나타냈던 게 사실입니다.

 영조는 왕이 된 후 탕평책으로 왕권을 강화하며 국가전례를 정비하고 경제를 개혁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요.그의 탁월한 경제 감각과 천재적인 국정운영은 셀 수 없이 많으며 치적 또한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영조의 천재성은 아들인 사도세자에까지 이어졌지만, 역사상 가장 불운한 비운의 왕자로 기록되게 됩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게 한 후 후회할 때마다 사도세자의 영특함을 자주 언급했다 합니다. 사도세자의 명석함은 아들인 정조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앞서 언급한 거처럼 조선시대 왕자들은 철저한 영재교육을 통해 성군의 자질을 갈 고 닦습니다. 물론 연산군과 같은 안타까운 경우도 있지만, 영조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훗날 역사가 말하는 성군으로 불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철저한 영재교육과 연잉군의 천재성이 만나서 훗날 역사에 길이 남는 영조대왕이 탄생하였을 거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어떤오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