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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동이, 두 왕자의 형제애는 사실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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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화드라마 '동이'에서는 장희빈과 동이의 극한 대립과 달리 세자(훗날 경종)와 연잉군(훗날 영조)의 형제애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세자의 서책을 훔쳤다는 누명을 연잉군에게 씌운 장희재의 계략에도 세자는 연잉군을 보호하며 또 한 번 형제애를 과시했는데요.

 이는 지난 방송분에서도 연잉군과 함께 공부하고, 투호를 가르쳐주며 즐거워하는 세자의 모습은 어미인 장희빈을 분노하게 만들고, 이런 세자를 친형처럼 따르는 연잉군을 보는 숙빈(동이)도 아들에 대한 걱정이 날로 깊어가기만 하는데요.

 급기야 궐 생활이 답답했던 세자가 연잉군을 설득해 저자로 몰래 나가게 되고 세자는 도둑에 몰리지만, 자신의 신분을 말할 수 없는 세자는 포도청으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런 세자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린 연잉군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안타까워합니다.


 과연, 권력을 위한 왕실의 음모 속에서 왕권을 두고 경쟁하게 될 세자와 연잉군, 과연 두 왕자는 드라마에서 처럼 우애가 두터웠을까요?

  14세의 어린나이에 어머니가 사사되는 충격을 감당해야하는 시련을 겪었던 경종은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이었고 일설에 따르면 어미인 장희빈이 사사되기전 그의 생식기를 잡아 당겨 이후로는 후사마저 보지 못 하는 불임이 되고 맙니다.

 장희빈이 사사된 후 숙종은 소론을 배제하고 노론을 중용하였으며 세자가 병약하고 자식 생산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당시의 좌의정인 노론 영수 이이명에게 숙빈최씨 소생 연잉군(훗날 열조)를 후사로 정하라고 부탁합니다. 이를 정유독대라 하며 이 일로 또 한 번 노론과 소론은 크게 대립을 하죠.

 이런 대립 속에 숙종이 재위 46년 만에 사망하자 결국 1720년 세자(훗날 경종)이 보위에 오르게 됩니다. '소론의 왕', '노론의 왕자'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경종 초에는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이 정권을 잡고 있었기에 노론은 경종을 압박하여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할 것을 주장합니다. 힘없는 경종은 노론의 요구대로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게 되는데요.

 이런 연잉군의 세제책봉은 당시 실권을 장악했던 오론의 압력도 있었지만 어린시절부터 함께해온 연잉군의 됨됨이를 경종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경종 4권, 1년(1721 신축 / 청 강희(康熙) 60년) 8월 21일(기묘) 1번째기사
세제 임명의 명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하는 왕세제의 상소      
      
왕세제(王世弟)가 상소하기를,
“신은 어리석고 불초(不肖)하여 지금의 작위(爵位)에 끼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분수에 넘치는 일이옵니다. 그래서 여느 때에도 늘 부끄럽고 두려워 못이나 골짜기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절대로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을 갑자기 내릴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신은 이 명령을 듣고 심담(心膽)이 함께 떨어진 듯하여 놀랍고 두려워 울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의 성질은 본래부터 소활(疎闊)하여 오직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성세(聖世)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만이 마음속에서 항상 계획했던 바입니다. 신의 충정(衷情)은 다만 천지 신명께 질정(質正)할 수 있을 뿐아니라, 선대왕의 척강(陟降)하는 혼령도 밝게 아시는 바로 성상께서 위에 계신데서 어떻게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원컨대 성자(聖慈)께서는 자성(慈聖)께 앙품(仰稟)하여 빨리 성명(成命)597) 을 거두어 주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미리 저사(儲嗣)를 정한 것은 종사(宗社)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변변치 못하여 이미 30세가 지났는데도 아직껏 후사(後嗣)가 없으며, 또 기질(奇疾)마저 있으니 국사를 생각해 보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자성(慈聖)께 앙품하고 군신들의 청에 따라 저이(儲貳)의 중명(重命)을 맡기는 바이니 소심 익익(小心翼翼)598) 하고 근근 자자(勤勤孜孜)599) 하여 백성들의 큰 희망에 부응토록 하라.”
하고, 승지를 보내어 선지(宣旨)를 전하였다.

위에서 처럼 세제를 책봉하려는 과정에서도 두사람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요.

  경종은 1724년 8월 재위 4년 2개월 만에 37세를 일기로 승하하는데 연인군은 세제가 되었어도 형인 경종의 병간호를 손수 행하였으며 경종의 먼 친척까지도 일일이 챙겼다 합니다.


 하지만, 형제애를 떠나 두 사람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론의 왕', '노론의 왕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으니 결국 이들의 우정은 소론과 노론의 편가르기로 조금씩 멀어지게 되는데요.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한 것도 모자라 노론은 한 술 더 떠서 경종의 병환이 심하고 후사가 없으므로 정무에서 손을 떼고 연잉군으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자고 주장합니다. 이 일로 또다시 노론과 소론은 치열하게 싸우게 되고 경종은 세제 대리청정을 가납했다가 다시 명을 거둬들이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거처럼 노론은 경종 즉위 뒤 1년 만에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로 책봉하는 일을 주도하고, 세제의 대리청정을 강행하려 하였습니다. 노론이 이 과정에서 두 차례의 태도 변화를 보임으로써 소론측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데요.

 결국, 소론은 노론이 숙종 말부터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주도하고자 한 것이 경종 제거계획에서 나온 것으로 음모를 꾸미고 탄핵 정국을 주도하여 결국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를 신임사화라 얘기하죠.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어머니 희빈 장씨를 죽게 한 장본인인 노론을 경종은 결국 퇴출하게 된 것이고 이를 다시 말하면 연잉군의 최측근들이 형의 손에 제거된 것이죠.

 연잉군이 경종이 승하할 때까지 그의 병간호를 주관하였다 하나 한의학에서 꺼리는 게장과 생감그리고 인삼과 부자탕을 어의의 반대에도 경종에게 올린 이유로 연잉군은 왕이되고 나서 오늘날까지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진실은 역사만이 알겠죠.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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