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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대왕세종]최해산, 그 위대한 일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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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약 무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최무선(崔茂宣)은 고려 말에 화약 무기를 개발해 왜구를 물리치고 우리나라 전쟁사에 있어 군사무기의 역사를 바꾼 과학자이며 무장이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화약을 발명한 1370년대까지 세계에서 화약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오로지 중국밖에 없었으며 화약 제조방법 또한 극비에 부쳐 절대로 나라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였으니 최무선은 원나라에 가서 직접 화약 제조 방법을 습득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고려를 제2의 화약보유국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군사무기 발전사에서 찬란한 업적을 쌓은 최무선은 조선왕조가 들어선 뒤인 태조(太祖) 4년(1395년) 4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당시 그의 아들 최해산(崔海山)은 겨우 15세였습니다. 그가 남긴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화포법(火砲法)>과 같은 화약 및 화포 관련 서적은 최해산을 통해 전해져 조선 초기의 화약과 화포 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불행히도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무선(崔茂宣)이 약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즈음에 그의 아들인 최해산(崔海山)이 겨우 15세인 것에 대해 일설에는 최해산 위로 맏아들이 있었는데 화약 실험을 하다가 폭발사고로 일찍 죽었다고도 전해집니다. 또한, 최해산이 글을 깨우친 것도 이즈음이라 하니 드라마에서처럼 세종이 문자를 창제하는 것에 대해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 장영실과 최해산의 심정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네요.


 최해산이 태종 1년(1401년) 3월에 군기시 주부로 특채된 것은 권근(權近)이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과 목화씨를 몰래 들여온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을 채용하라고 건의한 것을 태종이 받아들였기 때문인데요. 이에 따라 문익점의 아들 문중용(文中庸)은 사헌감찰, 최해산은 군기주부로 특채되었습니다.

 사실 최무선이 고려말 화약과 화포들을 사용하여 왜구와 변경의 적들을 소탕하긴 하였으나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명나라의 눈치를 보는 데에 급급하여 보다 발전한 화약무기 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태종(이방원)은 어차피 국가 간의 경쟁은 국방 체계와 기술발전에 달린 것이라고 보았기에 최해산을 특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1409년 군기감승(軍器監丞)에 오르고, 그해 10월에는 화차를 만들어 왕이 임석한 가운데 해온정(解慍亭)에서 발사시험을 하여 태종을 기쁘게 하였으며, 세종 6년(1424년) 12월에도 군기판사로서 왕을 모시고 광연루(廣延樓)에 나아가 화포발사 연습을 주관하였다 전해집니다.

 1425년 군기감사를 지내고 1431년 6월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던 해 10월 그가 오랜 군기감 근무로 옳지 못한 일이 많았다 하여 조정신하들이 그의 파직을 건의하였지만 세종의 두터운 신임으로 허락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듬해 공조우참판으로 승임됩니다. 1개월 후 판경성군사(判鏡城郡事)로 전보되었을 때에도 세종은 그가 외직으로 나가면 군기감의 업무가 부실하여진다 하여 중추원부사를 제수합니다.
 
 이런 그의 승승장구에 제동이 걸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바로 1433년 좌군절제사로 도원수 최윤덕(崔潤德)과 함께 파저강(婆猪江)토벌작전에 참전하였을 때에도 군기(軍機)를 이행하지 않은 관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그가 20여 년 동안 오로지 화포를 맡았으니 어찌 공이 없다고 하겠는가. 벼슬만 거두도록 하라.”고 하여 용서하였다 합니다.

 최해산이 군기주부로 특채될 당시 "화약 4근 4냥, 화기 200여 병(柄)"이던 것을 20여년이 지난 후에는 "화약 6,900여 근, 화기 1만 3500여 병, 화포 발사군(火砲發射軍) 1만여 명"으로 군비가 확장되었으니 실로 비약적인 성과라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죠.


 1434년 제주안무사, 1436년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는 동안 목민관으로 명성을 떨치다 세종 25년(1443년) 세상을 떠나지만, 그가 만든 화포를 바탕으로 1445년 조선 특유의 형식과 규격을 갖춘 새 화포가 만들어졌고, 이어 1448년 그것을 집대성하여 〈총통등록 銃筒謄錄〉이 편찬,간행되었습니다.

영화 "신기전"에서 명나라 자객에게 신무기의 비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폭하는 것과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장영실을 위해 장렬히 순직하는 장면은 작가의 상상력일 뿐임을 알려드립니다.

 최해산은 오직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평생을 바쳐 화약과 화약 병기를 만드는 데 전념했고 그의 아들 최공손(崔功孫)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화약무기 개발에 참여하게 됩니다. <어떤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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