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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천추 태후]마의태자의 손자는 김치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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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방영된 KBS 대하사극 '천추 태후'에서 김치양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바로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의 손자 김행(金幸)이였다는 내용인데요. (역사에 김행(金幸)은 마의태자의 손자가 아닌 아들로 나옵니다.)

아무리 드라마라 하지만 그래도 대하 사극인데 이렇게 터무니없는 인물설정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천추태후가 사랑한 김치양은 신라왕족의 후손인 김행(金幸)이 아닌 황해도의 호족으로 천추태후의 황보가문과는 외족(外族)일 가능성이 큽니다.

 김치양의 이러한 설정은 아마도 고려출신으로 여진에 넘어가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 김행(金幸-금행今幸-금준今俊)과의 연관성을 둔 듯 보이는데요. 김행(金幸)이 마의태자 김일(金鎰)의 아들이었다는 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 마의 태자는 누구인가?

 다음은 다음 백과사전에 소개된 마의태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당시 고려 왕건(王建)과 후백제 견훤(甄萱)의 세력에 눌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자 935년(경순왕 9) 군신회의(君臣會議)를 소집하여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마의태자는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충신·의사(義士)와 함께 민심을 모아 싸우지도 않고 천년사직(千年社稷)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느냐며 반대했으나, 경순왕은 죄 없는 백성을 더이상 죽일 수 없다 하여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국서를 보내 고려에 항복했다.
 
마침내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자, 개골산(皆骨山:금강산의 별칭)에 들어가 베옷[麻衣(마의)]을 입고 풀뿌리·나무껍질을 먹으며 여생을 마쳤다.


 베옷[麻衣(마의)]을 입었다 해서 마의 태자로 불리는 이분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요. 드라마에서처럼 병으로 죽었다는 설과 여생을 끝까지 보내고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마의태자가 은둔생활을 하다 여생을 마친 게 아니라 치열한 신라 부흥운동을 펼쳤다는 등 그의 죽음 뿐 아니라 마의 태자에관한 얘기 중 많은 부분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 김치양(金致陽)의 실체 김행(金幸)은 누구?

 마의 태자의 본명은 김일(金鎰)이며 신라 제56대 왕인 경순왕과 죽방왕후 박씨의 아들로 2000년 인구조사에서 1만 7,391가구에 5만 6,318명이 사는 것으로 나타난 부안 김씨(扶安 金氏)의 시조이기도 합니다. 마의태자에게는 3명 또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김행(金幸)입니다.

 김행(金幸)의 다른 형제들은 고려에 남았지만 김행은 여진으로 가는데요. 이 당시 여진족(女眞族)은 상당히 미개한 민족으로 이들의 힘을 취하여 신라부흥의 불씨를 되살리려 한 것이죠. 드라마에서 김치양이 여진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는 설정도 여기서 나온 듯합니다. 

  여진족은 본래 10세기 초 이후 거란족이 세운 요(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여진은 이런 위협을 견뎌내고 금나라를 세웠으며 거란은 금나라에 멸망하고 마는데요. 미개한 여진족을 규합해서 금나라를 세운 인물이 김행(金幸)이었다는 가슴 뿌듯한 설도 있습니다.  [어떤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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