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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천추태후]개령군(목종)은 왜 동성애자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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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 욱(태조 왕건와 선정왕후 소생)과 선의왕후의 2남인 성종은 981년(경종 6년) 사촌형인 경종(최철호 분)이 위독하자 내선(內禪)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때 경종에게는 성종의 여동생인 황보수(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이미 2살 된 아들 송(목종)이 있었으나, 너무 어려 국사를 맡을 수가 없었기에 대신 왕이 된 것이죠. 
 
 22세에 왕이 된 성종은 16년의 재위기간동안 많은 치적을 쌓았으나 38세가 되던 997년 병을 얻자 자신의 조카이며 경종이 아들인 왕송(개령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 10월 사망합니다.

 성종은 죽을 때 까지 아들이 없고 문화왕후(문정희 분)과 연창궁 부인 사이에 각각 1녀가 있었는데 이 두딸은 훗날 현종의 아내가 됩니다. (드라마에서 거란의 여인이 성종에게 시집온 것은 허구입니다.)


■ 어린목종을 대신해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다.                                                             

 이처럼 후사 없이 사망한 성종의 뒤를 이어 18세의 어린나이로 왕송(개령군)이 왕이 되자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미인 헌애왕후(채시라 분)가 섭정을 하게 되며 그녀는 주로 천추궁에 머물렀기에 자신을 천추태후라 칭하였습니다.

 천추태후가 섭정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과의 불륜으로 성종에 의해 귀양보내졌던 김치양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었습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연인인 김치양에게 인사권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실권을 아낌없이 허락하고 마는데요.

 이에 목종은 김치양의 지나친 월권을 경계하며 그를 내치려고 수차례 시도를 하였지만 어미인 천추태후의 반대로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왕이 되었지만 왕이 아닌 허수아비로 살게 된 목종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결국 아비인 경종과 같이 방탕한 생활로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데요.




■ 체념한 목종, 동성애에 눈을 돌리다.                                                                  

 이때 목종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된 이가 있었으니 놀랍게도 그는 여인이 아닌 '유행간(庾行簡)'이라는 남자였습니다. 유행간의 출중한 용모에 반하여 남색을 즐기게 된 목종은 유행간이 소개한 유충정(劉忠精)이라는 또 한 명의 남자를 알게 되어 그와도 동성애행각을 벌이는 등 목종의 타락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종은 천추태후가 김치양에게 그러했든 자신의 연인(?) 유행간에게 정사의 모든 권한을 부여했으니 유행간의 오만방자함은 하늘을 찔렀고 이로 인해 고려는 김치양과 유행간의 농간으로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목종과 동성애를 즐긴 유행관과 유충정은 모두 호족 출신입니다. 유행간은 고려의 명장 유금필(庾黔弼)의 일족이며 유충정은 목종의 증조모인 충주 유(劉)씨의 일족이었으니 목종이 이들과 돈독한(?)관계를 유지했던 건 천추태후로 대표되는 황보가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와중에 후사가 없는 목종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기고 마는데요. 바로 어미인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사이에서 아들이 나온 것입니다. 이 당시 목종의 대를 이을 인물로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신애 분)와 경주원군(김호진 분)사이에서 태어난 대량원군이 확실시 되던때였습니다.

 대량원군은 헌정왕후가 죽자 잠시 성종에게서 길러졌으나 대량원군이 울면서 아비를 외치자 이에 측은하게 생각한 성종이 대량원군을 귀양가있는 경주원군에게 보내게하여 대량원군은 아비의 손에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다섯살이 되던 해에 아비인 경주원군이 병으로 죽자 다시 개경으로 돌아옵니다. (드라마에서 경주원군이 그의 존재감에 위협을 느낀 김치양일당에게 살해당하는 것은 허구입니다.)

 김치양과 천추태후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자 목종의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대량원군의 목숨이 바람 앞에 등잔불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마는데요. 설상가상으로 목종이 병을 얻자 이를 기회로 김치양은 수차례 자객을 보내어 대량원군을 죽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대량원군은 목종에게 구원요청의 편지를 보내지만 목종의 측근 유행간에 의해 전달되지 못하였습니다.


■ 여자보다 무서운 남자의 질투, 왕을 몰락 시키다.                                                      

 유행간은 용모가 여자 같고 아름다웠으며 유충정은 남자다운 용모였으므로 목종은 유행간을 더 신임하였는데요. 이를 시기한 유충간의 질투에 유행간이 번번히 찢어 버린 대량원군의 편지는 몰래 빼돌려져 목종에게 전달되는 데 성공합니다.

 대량원군의 다급한 편지를 읽은 목종은 그의 명령으로 절에서 살고 있던 대량원군을 대궐로 불러들이는 한편, 서경 도순검사 강조에게 대량원군을 보호할 것을 명하며 개경으로 강조를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강조는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내려오던 중 마음을 바꾸어 오히려 목종을 폐위시키고 김치양 일당을 처형했으며 대량원군을 추대하여 현종으로 즉위시킵니다.

 강조의 변으로 폐위된 목종은 유폐지로 향하는 도중 강조의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으며 천추태후 유배되었지만 곧 풀려나 황주에서 살다가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다른 설에 의하면 목종이 강조에 대량원군을 보호하라고 쓴 편지는 유충정이 조작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인데요. 목종이 아무리 병이 들었다 하나 그의 나이 30세 밖에 되지 않은 터로 충분히 후사를 기대할 수 있었으며 처음부터 대량원군을 후계자로 생각했다면 그를 절간에 혼자있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죠.

따라서 유충정과 유행간의 질투 경쟁에서 밀려난 유충정의 위기의식이 목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강조를 개경으로 불러들였으며 결국 목종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비극을 낳게 된 게 아닐까요?

유충정의 의도대로 유행간은 강조에 의해 죽게 되었지만 그 또한 강조의 손에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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