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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뿌리깊은나무,집현전 꽃미남 2인방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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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26일 방송된 SBS 대기획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젊은 집현전 학자 성삼문(현우)과 박팽년(김기범)이 반촌 검안소에서 살해당한 집현전 학사의 허담과 윤필의 시신을 훔친 뒤 자신들의 몸에 새겨진 자문(문신)과 시신의 자문을 비교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습니다.

 눈치 빠른 성삼문은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라고 얘기하고 자신들도 이들과 같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이후 음란서생으로 가장한 장성수의 수상한 행동에 성삼문은 그를 미행하고 그에게서 자신과 같은 문신을 발견, 같은 천지계원임을 확신합니다. 이때 성삼문은 “천지계원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전하께서 은밀히 하는 일이 뭔지 꼭 알아야겠다. 우리 동료 학사들은 왜 죽었고 이제 누가 죽을지 알아야겠다”며 장성수를 붙잡지만, 성삼문과 헤어진 장성수는 결국 세번째 희생자가 되고 마는데요.

 드라마에서 성삼문은 산만하고 어수선한 캐릭터이지만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로 동무인 박팽년과 함께 허담과 윤필의 시신을 훔치게 된 과정과 장성수의 기행동을 누구보다도 빨리 눈치채는 행동에서도 그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드라마속의 성삼문
젊은 현전 학사. 훈민정음창제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는 인물로, 산만하고 어수선하지만 비상한 머리로 답을 척척 내놓는 천재 캐릭터다. 비밀 조직 내에서도 귀여운 투덜이 노릇을 하고, 궁녀들과 수다도 잘 떨고, 궁 안 어디든 나타나 극 전체에 활기를 집어넣는 인물이다. 


드라마속의 박팽년
젊은 집현전 학사. 이도의 비밀조직원 중 한명. 성삼문과 함께 음운학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이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일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성삼문과 단짝이며, 과묵한 원칙주의자이다.그래서 성삼문과 함께 항상 티격태격하기 일쑤이나 사건 수사등에 있어서 명콤비를 이룬다.



 하지만, 세종 이도(한석규)의 총애를 받던 성삼문과 박팽년은 여러분도 다들 아시는 사육신으로 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와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비참하지만 장렬한 죽음을 맞게 되는 인물들입니다.

1. 성삼문
 
성삼문은 조선 초기의 문무를 겸비한 무신 성승의 아들로 집현전학사로 조정의 경연을 도맡아 처리하는 등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 정인지,최항,박팽년, 신숙주,이개등과 함께 이를 도왔으며, 특히 신숙주와 같이 명나라 요동을 여러 번 왕래하면서, 그 곳에 유배 중인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黃瓚)을 만나 음운(音韻) 연구하여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데 큰 공헌을 합니다.

 1454년에 집현전부제학이 되고, 예조참의를 거쳐, 1455년에 예방승지가 되었지만 그 해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을 위협, 선위(禪位)를 강요할 때, 그가 국새(國璽)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여 세조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이후 아버지 승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박팽년, 유응부등을 포섭하여 단종 복위운동을 계획하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 1456년(세조 2) 6월 1일에 세조가 상왕인 단종과 함께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위한 잔치를 열기로 하자, 그 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거사일 전날에 집현전에서 비밀 회의를 열고 그의 아버지 승과 유응부, 박쟁 등의 무신들에게는 세조와 한명회를, 병조정랑 윤영손에게는 신숙주를 각각 제거하도록 분담합니다.

 그러나 거사 당일 아침에 갑자기 연회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의 시립이 폐지되어 거사는 일단 중지되고마는데요. 다시 거사는 세조가 친히 거둥하는 관가(觀稼 : 임금이 봄에 권농하기 위해 곡식의 씨를 뿌리는 것을 관람하던 행사) 때로 미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1차 거사에 차질이 생기자 함께 모의했던 김질이 불안을 느끼고 그의 장인 정창손과 함께 세조에게 밀고하여 성삼문, 박팽년등의 모의자들이 모두 잡혀가고 마는데요.

 그는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세조를 가리켜 ‘나으리’라 호칭하고 떳떳하게 모의 사실을 시인하면서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세조의 불의를 나무라고 또한 신숙주에게는 세종과 문종의 당부를 배신한 불충을 크게 꾸짖는 성삼문에 세조는 격노하고 불에 달군 쇠로 그의 다리를 태우고 팔을 잘라내게 했으나 안색도 변하지 않았다 합니다.


 결국, 아버지 승과 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등과 함께 거열형(두팔다리및머리를각각매단수레를달리게하여신체를찢는형)을 당하고 죽게됩니다.

 그 때 동생 삼빙,삼고,삼성과 아들 맹첨,맹년,맹종 및 갓난아이까지 모두 죽음을 당해 혈손이 끊기게 되죠.

성삼문이 죽은 후 그의 집을 살펴보니 세조가 준 녹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을 뿐 가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방바닥에 거적자리만 깔려 있었다 전해질 정도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신(節臣 : 절개를 지킨 신하)으로서 오늘날까지 국민의 추앙을 받고있는 인물입니다.



2. 박팽년
 성삼문과 같이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은 1417(태종 17)에 태어나 1432년(세종 14)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고 성삼문과 함께 1447년에 문과 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가 됩니다.


 실제로 1418년생인 성삼문과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이개, 하위지등과 함께 두 사람은 사가독서(賜暇讀書)도 같이 했던 인물입니다.

사가독서 : 조선시대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

특히 필법에 뛰어나 남북조시대의 종유(鍾繇)와 왕희지(王羲之)에 버금가는 인물로 알려진 박팽년은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에 이릅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참지 못해 경회루(慶會樓)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성삼문(成三問)이 함께 후일을 도모하자고 만류해 단념했으며, 이 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 복위 운동을 펴기 시작합니다.

 앞서 성삼문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거사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혹독한 국문을 당합니다. 그는 이미 막역지우인 성삼문이 잡혀가 모의 사실이 드러났음을 알고 떳떳하게 거사를 도모했음을 시인하는데요.

 이때, 그를 총애했던 세조가 자신에게 복종하고 모의 사실을 숨기기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을 하지만 거부하게 됩니다.

박팽년은 성삼문과 마찬가지로 세조를 가리켜 '나으리'칭하였으며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다가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후 그의 아버지는 능지처사되고, 동생 대년과 아들 헌,순,분이 모두 처형되어 삼대가 참화를 입었으며, 그의 어머니, 처, 제수등도 역적의 가족이라하여 공신들의 노비로 끌려가게되어 가문은 풍비박산이 나게됩니다.

 그는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과 문종의 깊은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집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경국제세(經國濟世)의 명문(名文)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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