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이산]화빈은 정조의 세번째 후궁이 아니었다

반응형


  제가 쓴 드라마 이산에 관한 포스트를 읽으신 분이라면 다들 아실 테지만 어제 처음 등장한 화빈 윤씨는 원빈송연이(의빈 성씨)에 이어 간택된 정조의 세번째 후궁이 아닙니다.

원빈과 의빈 성씨에 관한 포스트에 이어 정조의 가계도를 다시 보며 화빈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비 효의왕후 청풍김씨 ( 자녀없음 )
제1후궁 원빈 풍산홍씨 ( 자녀없음 ) => 홍국영의 누이
제2후궁 화빈 파평윤씨 - 서1녀 옹주
제3후궁 의빈 창녕성씨 - 서1남 문효세자, 서2녀 옹주
제4후궁 수빈 반남박씨 - 서2남 순조, 서3녀 숙선옹주

  남원윤씨 좌찬성 윤창윤의 딸로 영조 41년에 태어난 그녀는 원빈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1년 뒤인 정조 4년에 두번째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며 이듬해 딸을 낳았으나 안타깝게도 옹주가 일찍 죽은 이후로는 소생이 없었습니다.

  순조 24년 1월 지병으로 60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는데 화빈윤씨는 소생이 일찍 죽어 왕실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는 이름이 오르지 못했으나 조선왕조 실록에는 그녀의 간택, 입궁기록, 출산기록, 사망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실존인물임에는 확실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한, 의빈성씨는 화빈(파평윤씨와)의 처소에서 일하는 나인으로 있다 정조의 눈에 띄어 승은을 받아 후궁이 됩니다.

☞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속의 화빈 윤씨의 기록입니다.

정조   4년 : 경자(1780) 3월 10일(기축)    윤창윤의 딸 윤씨를 화빈으로 책봉하다.
정조   4년 : 경자(1780) 3월 12일(신묘)    자경전에서 화빈의 가례를 행하다.
정조   5년 : 신축(1781) 1월 17일(경인)    화빈 윤씨가 임신하자 산실청을 설치하다.

순조 23년 : 계미(1823) 2월   3일(계묘)    휘경원의 지문·시책문·애책문의 내용(소생에 대한 기록)
순조 24년 : 갑신(1824) 1월 14일(무인)    화빈 윤씨의 사망

<어떤 오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