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영은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등이 포진되어있는 외척세력 풍산홍씨의 일문이었으나 그의 아비가 그다지 정치에 관심이 없던 터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드라마 초반에서 보이는 홍국영의 행태처럼 그의 청년기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 탓에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웠을 테니 과거급제도 힘겨워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실제로 문헌에는 그가 지닌 지적 역량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시강원 설서의 초라한 관직을 벗어나기엔 너무나 내세울 것 없었던 그가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 서게 되는데요. 바로 정조와의 만남입니다. 당시 정조는
벽파의 음해와 위협을 잘 견뎌낸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하지만, 이런 출세보다도 더 큰 세도를 누릴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왕의 외척이 되는 것이죠. 정후겸을 포함한 벽파세력을 피로 처단시킨
먼저 왕비인 효의왕후 김씨에게 후사가 없는 틈을 타 자신의 누이를 후궁으로 입궐을 시키는데 바로 원빈(元嬪)입니다. 여기서 원빈의 ‘원(元)’자는 근본이라는 뜻으로 왕위계승권을 잇는다는 의미가 있어서 후궁은 사용할 수 없는 용어로 당시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궁 1년 후 왕비와 첨예한 대립관계를 보이던 원빈도 후사를 보지 못하고 죽게 되는데 외척이 되려 했던 그의 야망은 일단 수포로 돌아가지만
바로 은언군(정조의 이복 형제)의 아들 담(湛)을 죽은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完豊君)으로 했다가 다시 상계군(常溪君)으로 개봉, 세자로 책립하게 함으로써 또 한번 외척으로 집권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이 사건을 "상계군의 옥"이라 칭하는데 다른 시각에서는 이즈음 정조가 계획했던 정계구상이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어서자 평소 권력을 남용하던
상계군의 옥으로 수많은 파직상소를 감당해내지 못한 정조는
원빈이 죽은 후 급속히 궁궐엔 독살 설이 퍼지게 되는데 이 소문의 표적은 곧바로 중궁전으로 향하면서, 효의왕후뿐 아니라 혜경궁을 비롯한 궁궐 내의 세력들과도 적대관계가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효의왕후를 독살시키려 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가산을 모두 빼앗긴 채 유폐되어 이듬해 사망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33세 살로 오로지 정조 한 사람만을 믿고 군림하려던 4년 천하는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유폐된 지 1년 만인 33살의 젊은 나이에 급사한 이유가 권력의 최고에서 군림하다 허무하게 추락한 것에 대한 허무함과 목숨을 버릴 각오로 충성을 바쳤던 주군으로부터 버림받은 배신감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다 화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답니다. <어떤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