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태종(이방원)의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최명길 분)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말~조선 초의 충신 민제의 딸로 양녕,충녕을 포함한 4남 4녀를 두었습니다. 태종보다 2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태종이 집권하는데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었으나 왕비가 된 이후에는 두 사람사이에 불화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태종은 외척인 민씨일가의 권력 분산과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후궁을 늘려나갔고, 민씨는 이에 대해 병적으로 보일 만큼 투기와 불평으로 태종의 심기를 흔들었는데 이즈음 태종은 세자인 양녕에게 왕위를 넘길 뜻을 표명하는데 바로 1차 선위 파동이었습니다.
☞ 민무구,무질 옥
1차 선위 파동을 계기로 민씨 형제의 교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외척 세력으로서 원경왕후와 양녕의 후광을 입고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오르는 권세로 말미암아 눈이 멀고 만 것입니다. 태종(이방원)이 누이를 외면하고 후궁들만 가까이 하자 양녕에게 찾아가 이 불만을 토로하게 되는데 이 일이 알려져 결국엔 탄핵을 받아 민무구, 민무질은 유배를 가게 되는데요.
이때만 해도 태종은 1차왕자의 난 때 세운 이들의 공과 왕비와 장인의 면목을 생각해 이 들의 목숨만은 보존하려 했으나 유배 중에도 종사에 어지럽히는 행동을 꾀하다 결국 사사 되고 맙니다.
민무구형제의 옥은 외척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태종의 책략일 수도 있지만 원경왕후 민씨와의 불화가 원인이 된 거 같습니다.
☞ 민무휼,민회 옥
그 후 5년 뒤인 1415년, 민무회가 공안부윤으로 있을 때 황주목사 염치용이 노비문제에 관하여 충성스럽지 못한 말을 한 것을 듣고도 묵인한 죄로 연루되어 벌어진 사건으로 처음엔 금방 가라앉을 듯 했으나 이것 또한 옥으로 발전하여 마치 민무구,무질 형제의 옥을 연장한 것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되고 맙니다.
이때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버리는 장본인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드라마에서 그들에게 기회의 손을 내민 양녕이었던 것입니다. “나에게 절대충성을 맹세한 자들을 버리는 일은 없을 거다. 지옥불까지 가서라도, 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지킬 것”이라며 무모한 행보도 불사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당시 양녕은 호탕한 성격 탓에 학문을 멀리하고 태종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행보를 자주 보였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상왕의 첩 초궁장을 건드린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 외척이던 민무휼,무회 형제와 어울려 다닌 사실을 태종이 알게 되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분명하므로 이를 은폐하고자 오히려 이들의 죄를 부각시키게 됩니다.
원경왕후가 병이 들었을 때 세자가 병을 돌보는 자리에서 민무휼, 무회형제가 태종이 공신 민무구,무질을 죽인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를 고함으로서 이들은 폐서인 되어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이후 얼마 못가 드라마에서 처럼 효빈과 당시 갓 태어난 경녕군을 죽이려 한 사건으로 유배 중에 다시 불려와 국문을 당하는데요. 이 때 다시 한번 민무구,무질의 억울함을 토로하다 국문이 끝난 후 나흘 만에 유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이 때 양녕의 나이 22세(민무구,무질 옥은 17세)로 자신의 잘못을 은폐시키기 위한 고자질로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의 불행은 극에 달하고 만 것입니다. <어떤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