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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바람의화원]어진(御眞)은 어떻게 그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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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御眞)을 담당하는 이를 어진화사(御眞畵師) 또는 어용화사(御容畵師)라고도 하며, 어용, 즉 임금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용 화사는 도화서 화원 중에서 발탁되지만, 화원이 아닌 화가 중에서도 천거하여 함께 시험을 거쳐 선발하는 때도 있는데요. 어용을 제작하는 일 중 어용 화사를 선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로 당대의 화가 중 화상(畵像)에 뛰어난 화가를 대신들이 천거하여 그 중에서 탁월하다고 인정되는 자가 집필(執筆)하였습니다.

 어진은 이미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작되어 왔으며, 어진 제작은 원래 임금의 후손들이 보은사상(報恩思想)에 근거한 추모의 정례로부터 행하여졌지만, 나아가서는 조종 및 국가를 상징하는 의미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기에 이처럼 중요한 어진 제작을 위해서는 군왕 이하 여러 대신, 화사(畫師)·공장(工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원의 동원과 세심한 배려를 필요로 했습니다.

 선발된 화사들은 세 부류로 나누어 지는데, 첫째가 집필 화사로 용안(龍顔)을 담당했으며, 둘째가 동참 화사로 용체(龍體)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담당했으며, 셋째가 수종 화사(隨從畵師)로 조역을 담당하여 어용 제작에 참여하는 화원의 수는 대개 6인이나 13인에 이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진은 그리는 방법에 따라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模寫)가 있습니다.

- 도사(圖寫) : 왕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리는 것.
- 추사(追寫) : 왕이 승하한 뒤 왕을 가까이 모셨던 측근이나 대신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는 것.
- 모사(模寫) : 어진이 훼손 되었거나 새로운 진전에 봉안하게 될 경우, 기존본을 베껴 그리는것.


 드라마에서 언급된 것처럼 어진은 단순히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군왕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정통성을 수립하려는 큰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진을 훌륭히 완성한 어진화사는 승진 및 물질적인 포상이상으로 어용화사라는 칭호를 더욱 명예로 여겼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현재 어진 제작 과정이나 진전 봉안 체제에 관한 세부적인 기록들은 남겨져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도사(圖寫)본은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어진, 서울 창덕궁의 영조어진, 철종어진, 익종어진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延礽君)뿐입니다.
 
 또한 숙종, 정조, 순조, 익조, 헌종등의 모사(模寫)본은 1900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던 같은 해 8월, 원인 모를 화재로 선원전에 모신 역대 왕의 어진이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여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라는 분이 다시 모사한 것입니다. <어떤오후>
  

 ☞ 어진에 관한 많은 얘기는 블로그 "해와 달의 노래"에 자세하게 나와있어 링크합니다.

"영조"의 어진 - 이순재씨와 많이 닮아서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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