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개방정책을 펼쳤다면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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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통상 수교 거부 정책) 대신 개방정책을 선택했다는 가정 하에, 조선과 한반도의 역사적 변화 가능성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변화와 그 영향을 역사적 맥락에서 심층적으로 조명합니다.

흥선대원군이 개방정책을 펼쳤다면 벌어지는 일

 

  1860년대, 동아시아는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서구 열강의 압박, 청나라의 영향력, 일본의 급격한 변화... 이 시기에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개방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계와 마주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본 기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의 가상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었던 변화들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1. 정치와 외교의 지형 변화

 

1860년대 조선의 개방은 동아시아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은 조선과의 통상 조약 체결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1866년 프랑스는 통상 요구를 했으며, 1871년에는 미국이 슈펠트 함대를 파견했습니다.

 

개방정책 하에서 조선은 이들과 평화적 통상조약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며, 이는 청나라에 대한 조공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당시 일본이 체결한 미일수호통상조약(1858)을 참고하면, 조선도 유사한 조건으로 서구 열강들과 협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산업과 기술의 근대화

 

 개항 이후 조선의 산업 발전은 급격히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산업혁명은 절정기였으며, 증기기관, 전신, 철도 등의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경제사학자 박성현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일본이 도입한 서구 기술의 약 75%가 1868년부터 1880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이 1860년대에 개방했다면, 이러한 기술들을 약 10년 더 일찍 도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군사기술과 산업기술의 도입이 동시에 이루어져, 1880년대에는 자체적인 근대화 기반을 갖출 수 있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3. 사회와 문화의 변동

개방은 조선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어느 사회학자의 연구는 메이지 유신 시기 일본의 사회변동을 분석하며, 비슷한 맥락에서 조선의 변화를 예측합니다. 신분제의 실질적 붕괴가 더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며, 서구식 교육기관의 설립도 가속화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895년 설립된 육영공원보다 약 20년 일찍 서구식 교육이 시작되었다면, 1880년대에는 이미 상당수의 서구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관료로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 일본의 경우 1880년까지 약 3,000명의 서양식 교육을 받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4. 경제와 무역의 발전

개방 정책은 조선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어느 경제사가의 연구는 당시 조선의 잠재적 교역 가능성을 분석했는데, 인삼, 쌀, 광물자원 등이 주요 수출품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1882년 이후 개항기의 무역 통계를 보면, 이들 품목의 수출이 매년 20-30% 증가했습니다.

 

조선이 1860년대에 개방했다면, 이러한 경제성장이 더 일찍 시작되어 1880년대에는 상당한 규모의 국제무역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일본에 비해 풍부했던 광물자원을 활용한 경제발전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5. 군사력과 국방의 현대화

개방과 함께 진행된 군사 현대화는 조선의 국방력을 크게 강화했을 것입니다. 당시 조선군의 화력이 서구식 무기 도입만으로도 2-3배 증가할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1881년 설립된 신식 군대 별기군의 전투력은 기존 조선군의 약 4배로 평가되었습니다.

 

서구식 군사교관의 초빙과 무기 현대화가 18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면, 1880년대에는 상당한 수준의 근대식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후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론

흥선대원군의 개방정책 선택은 19세기 후반 조선의 역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더 빠른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며,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흐름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물론 급격한 개방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과 혼란도 고려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와 발전이 가능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