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여진왕자의 죽음과 해씨 고구려


 12/10 방영된 "바람의 나라" 28회에서는 반란을 피해 국내성을 빠져나가다 큰 부상을 당하게 된 여진 왕자가 죽음을 맞는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역사 속의 여진 왕자는 드라마와는 달리 갑작스레 강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죠.



다음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여진 왕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름 4월 왕의 아들 여진이 물에 빠져 죽었다. 왕이 애통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시신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는데, 뒤에 비류 사람 제수가 여진의 시신을 찾았다. 그 소식을 듣고 곧 예를 갖추어 왕골령에 장사지내고 제수에게 금 10근과 밭 10경을 주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37년(A.D.18) 조)


넷째 왕자 여진은 유리왕이 가장 총애하던 인물로 이 사건의 충격으로 유리왕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하고 맙니다.  유리왕은 병약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휴양처인 두곡에서 휴양을 하지만,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5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죠.



 유리왕이 죽은 후 무휼과 해색주 두 아들이 고구려의 3대 대무신왕, 4대 민중왕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결국 그 손자인 5대 모본왕(무휼의 장남)으로 그 왕통이 끊어지고 맙니다. 모본왕의 아들은 모본왕의 잔혹한 성격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5대 모본왕(무휼의 장남)으로 끝난 "해씨" 고구려의 뒤를 이은 사람이 6대 태조대왕이 되는 "궁"이라고도 불리는 "어수"라는 인물인데요. 이 어수라는 인물은 여진 왕자가 익사한 후 유리왕이 그 허전함을 달래고자 양자로 받아들였던 "재사"의 아들이였습니다.


  이로서 주몽의 후손으로 이어진 "해씨" 고구려는 5대 모본왕(해우)로 끝나게 되고, 6대 태조대왕(어수)로 "고씨"고구려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어떤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