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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바람의나라]무휼이 죽은 후 고구려는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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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몽의 손자이자 2대 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무휼)의 일대기를 그린 KBS "바람의 나라"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아쉽게도 대무신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과 후의 이야기를 모두 다룰 것이라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대무신왕이 대소왕을 죽이고 왕이 되면서 종영되고 말았는데요.


 앞선 포스트에서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9/01/08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바람의나라]무휼(대무신왕), 그 치열했던 일대기는?

그렇다면, 대무신왕이 죽은 후의 고구려는 어떠했을지 언급하기로 합니다.


1. 불운한 황제 4대 민중왕
 총애했던 호동왕자가 죽은 뒤 대무신왕은 제1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해우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서기 44년 대무신왕이 4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태자는 너무 나이가 어렸었기에 대무신왕의 아우인 해색주가 왕위에 올랐는데 바로 4대 민중왕입니다.

 민중왕은 왕위에 오르자 죄수들을 풀어주고 신하들을 위해 큰 잔치를 여는 등 성군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된 이듬해(45년) 동부 지역에 큰 홍수가 발생하여 수많은 백성이 굶주리고 죽는 등 큰 어려움을 겪는데요. 이에 민중왕은 국고를 열어 백성을 구제합니다만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듬해(46년) 겨울에는 위나암에 눈이 내리지 않아 많은 백성이 겨울가뭄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긴 하지만 왕이 된 후 계속된 고구려의 수난은 민중왕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충분했고 결국은 47년에 병으로 자리에 눕고 맙니다.

그것도 모자라 계속된 악재로 나라의 통치권이 소홀한 틈을 타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민주왕의 병세는 더욱 깊어 갔으며 결국 왕이 된 지 5년 만인 서기 48년 민중왕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2. 신하에게 죽임을 당한 폭군, 5대 모본왕.
 민중왕이 죽은 후 대무신왕과 제1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해우가 왕이 되는데요. 5대 모본왕입니다. 

 모본왕는 제1왕후의 아들이지만 이미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아버지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호동왕자로 말미암아 왕위계승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 속에서 자라야 했고 아버지가 죽은 후 삼촌인 민중왕이 보위에 있던 5년을 또 한 번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성격은 지나치게 예민하며 의심이 많았습니다.

 모본왕이 왕이 되었을 때도 고구려는 홍수와 서리, 우박 등으로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으며 이로 인한 정세의 불안으로 의심 많은 모본왕는 역모를 두려워하며 모든 신하들과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기 시작하는 데요. 결국, 그의 성격은 포악해 졌으며 고구려사에 악명높은 군주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그의 폭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아래의 기록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본왕 4년,왕이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앉을 때는 사람을 깔고 앉으며 누울 때는 사람을 베고 누웠다. 만일 사람이 조금만 움직이면 가차없이 죽였으며 신하 중에서 간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활을 쏘아댔다."

 이러한 모본왕의 폭정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모본왕에게는 두로라는 충신이 있었는데 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총애를 받고 있긴 하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악한 왕의 성격으로 볼 때 그 또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랐기에 항상 두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두로에게 "옛 사람의 말에 '나를 사랑하면 임금이요,나를 학대하면 원수'라고 했다.이제 황제가 포악한 짓을 하여 사람을 죽이니 이는 백성의 원수다. 그대는 백성의 원수인 황제 해우를 처단하라."고 하자 이 말에 용기를 얻은 두로는 서기 53년 11월에 칼로 모본왕의 목을 찔러 죽여버리고 맙니다.



3. 아~ 고구려!
 모본왕이 살해당한 후 신하들은 유리왕의 여섯째 아들 재사에게서 태어난 7살 된 궁을 새 왕으로 추대하였는데요. 바로 6대 태조왕입니다.

 일곱 살에 왕위에 오른 태조왕은 고구려 역사상 가장 긴 93년간을 왕위에 있으면서 영토를 확장하고 중앙집권적 형태로 체제를 정비하여 후손들의 가슴에 영원한 자긍심으로 길이 남을 대(大)고구려가 실질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반을 마련한 또 한 명의 위대한 왕이기도 합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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