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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왕녀 자명고' 속 이상한 나라, 낙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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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왕녀 자명고’의 주요배경은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과 호동왕자에 의해 낙랑국이 멸망하기까지 낙랑국의 건국에서 왕녀 자명, 낙랑 공주가 죽음을 맞게 될 때까지입니다.

 드라마 방영 전 스페셜방송에서도 '왕녀 자명고' 속 배경으로 "서기 18년부터 37년까지의 최리가 왕으로 있던 낙랑국을 배경으로 삼았다"고 설명해 실존하는 역사에 기반을 둔 상상 속 낙랑의 모습을 구현했다는 점을 분명히 전했는데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드라마 속 '낙랑국'에 대한 설정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어 언급할까 합니다.


 많은 분이 헷갈리는 부분이 바로 '낙랑국'과 '낙랑군'의 차이입니다. '삼국사기'를 포함하여 조선시대까지는 낙랑국과 낙랑군을 같은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그 위치로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를 지목했습니다. 이는 중국 역사서를 참조한 '삼국사기'의 오류로 판단되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1. 한나라에 복속되어 있던 낙랑군(樂浪郡)
 BC 108∼BC 107년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그 고지(故地)에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을 한사군(漢四郡)이라 하는데요. 국민 드라마 '주몽'에서 자주 접했던 임둔군(臨屯郡),진번군(眞番郡),현도군(玄菟郡)과 더불어 낙랑군(樂浪郡)이 여기에 속합니다.

 따라서 낙랑군은 한나라에 복속 되어 왕이 아닌 태수가 통치를 맡아 보던 곳으로 '왕녀 자명고'에 등장하는 유헌(劉憲)이라는 나쁜 아저씨가 낙랑군의 태수로 등장하죠.  낙랑군(樂浪郡)은 한사군(漢四郡) 가운데 가장 나중에 토착민의 지속적이고도 거센 반항과 백제 ·고구려의 협공으로, 313년(고구려 미천왕 14년)에 마침내 고구려에 병합되어 완전히 소멸하고 맙니다. 드라마에서도 낙랑을 한사군(漢四郡)의 하나로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 최리(崔理)의 낙랑국
 역사서 속에서 최리(홍요섭 분)에 대한 언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 관한 이야기에 그 이름만 등장할 뿐입니다.

 대무신왕은 그를 심히 사랑하여 호동(好童)이라 이름하였으며 대무신왕 15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沃沮)를 유람하던 중 낙랑의 왕 최리(崔理)가 여기 나왔다가 호동을 보고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다. 그대야말로 북국(北國)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하며 호동을 데리고 돌아가 사위로 삼았다..

 낙랑에서 그곳의 공주와 혼인하고 돌아온 호동은 아내 최씨녀(崔氏女)에게 "그대의 나라 무구(武庫)에 들어가 고각(鼓角-북과 나팔)을 몰래 찢어버린다면 내가 그대를 아내로서 맞아들이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부부가 될 수 없으리라." 며 아내를 종용하였습니다. 이에 낙랑공주는 몰래 무고에 들어가 예리한 칼로 그 고각을 찢어 버리고 호동이게 그 사실을 알렸으며 호동은 그 말을 듣고 왕에게 고하여 낙랑을 공격했습니다. 낙랑의 왕 최리는 고각이 울리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있다가 고구려군이 성 밑에 이르러서야 깜짝 놀라 무고에 가보니 벌써 고각은 부서져 있었으며 그 사실을 안 최리는 마침내 딸을 죽이고 항복하고 만다. <삼국사기中>


 최리의 낙랑국은 서기 32년(대무신왕 15년) 호동의 계략으로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찟어버림으로 고구려에 항복을 하였으며 5년 뒤인 서기 37년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왕녀 자명고'에 소개된 '최리'


3. 문제점
'왕녀 자명고'에서 최리와 함께 태수를 몰아내는데 동참하는 왕굉(나한일 분)은 드라마 속에서 최리의 두 번째 부인 왕자실(이미숙 분)의 오빠로 등장하는데요.

 증선지가 지은 중국 고대사를 담은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의하면 한이 왕준(王遵)을 보내서 유헌을 죽이고 낙랑태수가 된 왕조를 공격하니 낙랑군 사람 왕굉 등이 왕조를 죽이고 한에 항복했다고 합니다. 또한, 왕굉은 한나라 낭야왕 중(仲)의 7대손으로 전해집니다.

따라서 왕굉은 낙랑국 사람이 아닌 낙랑군 사람으로 최리와는 동시대에 존재할 수가 없었던 인물입니다.

'왕녀 자명고'에 소개된 '왕굉'



 드라마에서 최리를 경계하며 갓 태어난 그의 딸을 죽이려 하는 태수 유헌(劉憲)도 낙랑국이 아닌 낙랑군 사람이며 최리와 왕굉이 유헌의 낙랑군을 몰아내고 낙랑국을 세우는 설정 또한 심각한 시간적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낙랑국(37년 멸망)이 낙랑군(313년 멸망)보다 훨씬 전에 멸망하죠.

개인적인 판단으론 제작진이 '낙랑국'과 '낙랑군'에 대한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한 거 같습니다. 

- 대무신왕이 호동을 앞장세워 낙랑을 정벌하는 장면 : 자막에 '서기 32년'으로 표기됨
  이는 서기 37년(고구려 대무신왕)에 멸망한 '최리의 낙랑국'을 얘기함

 - 낙랑 태수 유헌(劉憲)이 등장하는 장면 :  나레이션으로 한사군(漢四郡)에 속한 낙랑으로 소개
  이는 '최리의 낙랑국'이 아닌 서기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 멸망한 낙랑군을 얘기함

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시 말해 '왕녀 자명고' 속 배경으로 "서기 18년부터 38년까지의 최리의 낙랑국을 배경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드라마상에서는 그 멸망시기가 20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한사군(漢四郡)에 속한 '낙랑군'과 '최리의 낙랑국'의 인물과 배경들이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것입니다.  
 
'왕녀 자명고' 또한 다른 사극과 마찬가지로 역사 왜곡의 논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듯합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MBC'조선왕조 오백 년'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 까요? <어떤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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