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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천추태후]찌질이 이현운,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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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에서 안융진 성주로 있다 거란의 1차 침입에서 비굴하게 항복하려한 죄로 강등한 후 지금은 문화왕후(문정희 분)의 첩자 노릇을하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현운(李鉉雲: 최준용 분)인데요. 

 드라마에서처럼 궁궐에서 왕후의 첩자로 있었던 것은 허구로 보이나 그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기에 정확하게 아니다는 말은 할 수 없겠네요. 아무튼, 이현운이라는 인물은 실존인물로 역사의 배신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성종이 아들 없이 죽고 경종의 아들인 목종(천추태후의 아들)이 즉위하자 김치양 등의 외척 세력은 천추태후와 결탁하여 정계에 다시 등장하여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것도 모자라 김치양은 천추태후와 불륜의 아들을 낳고 그를 책봉하고자 대량원군(大良院君 후의 현종)을 살해할 모의를 하다가 실패하였으며, 목종까지 죽이려다 이또한 실패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목종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중추사 우상시 겸 서북면 도순검사로 북쪽을 지키고있던 강조를 개경의 궁궐 수비와 대량원군의 신변보호를 위해 부릅니다. 이때 이현운도 강조와 함께 이부 시랑(吏部侍郞)으로 있었는데요.  목종의 부름으로 이현운과 함께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온 강조는 혼란의 책임이 왕에게도 있다하여 목종을 폐위시키고 김치양 일당을 처형했으며 대량원군을 추대하여 현종으로 즉위시킵니다.

이때의 공으로 강조는 중대사(中臺使)가 되고 그는 중대부사(中臺副使)가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거란의 2차 침입의 빌미가 되고 마는데요. 1010년(현종 원년), 요나라 성종은 강조가 목종을 강제 퇴위 시키고 대령군(현종)을 왕으로 추대한것을 구실로 직접 기,보병 40만명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실이였을뿐. 실제 고려를 침략하여 거란의 땅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현종은 강조를 ‘행영도통사’로 삼고 이현운을 부장으로 삼아 30만 병력으로 통주에 방어진을 구축합니다. 통주성 전투에서 강조는 평야지대에 군대를 세 곳으로 배치해 놓고 거란군을 가운데로 유인한 뒤 신무기인 검차(劍車)를 사용하여 일시에 격멸시키는 데 성공하게됩니다.

 그러나 첫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강조는 적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전열을 재정비하지 않고 평소에 너무 좋아했던 바둑에 열중하는데요. 그 유명한 강조장군과 바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강조는 바둑에 심취하여 거란군 선봉장 야율분노가 통주성에서 멀지 않은 삼수채를 공격해 왔다는 급보가 들어왔으나 “그까짓 거란 놈들 입안에 든 음식과 같아서 적으면 맛이 없다. 많이 들어온 다음에 한꺼번에 모조리 잡자.”고 큰 소리 치면서 바둑을 계속 두었으니 고려군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거란군이 삼수채를 점령했고 이어서 고려군 본진이 급습을 당하는 바람에 강조는 포로가 되고 맙니다.

 패배의 책임을 통감한 강조는 자결을 선택하였으나 이또한 이루지 못하고 이현운과 함께 거란 성종에게 끌려가는데요.

 거란 성종이 이현운에게 항복을 권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두 눈이 이미 새 일월을 보았는데 한 마음이 어찌 옛 산천을 생각하겠습니까.”라고 하며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이런 이현운을 보고 강조가 노하여 그를 발길로 차면서 말하기를, “너도 고려사람인데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요.

 반면에 성종이 강조의 결박을 풀어주고 묻기를 “그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어찌하여 작은 나라 고려에 태어났는가? 나는 그대를 살려주고 싶으니 나의 신하가 되는 게 어떤가?”하고 좋은 말로 회유했지만 강조는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절개를 굽히지 않은 채 장렬하게 죽음을 선택합니다.

 강조의 군사가 패한 뒤 거란군은 고려의 수도 개성을 점령했고 현종은 나주로 피난 갔다가 거란에 입조하는 조건으로 휴전을 합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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