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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천추태후]왕의남자 유행간은 광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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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에서 목종은 어머니인 천추태후의 지나친 섭정과 그녀의 정부인 김치양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탈선의 길로 접어드는데요. 급기야 부인인 선정왕후 유씨(이인혜 분)를 멀리하고 유행간이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유행간(庾行簡, 박진우 분)은 광대출신으로 여장을 하고 춤을 추다 목종의 눈에 띄지만 실제 유행간은 광대가 아닌 고려 전기에 유명한 폐신(嬖臣: 임금에게 아첨하여 신임을 받는 신하)으로 벼슬을 위위소경(衛尉少卿)까지 했던 유품렴(庾稟廉)의 아들입니다. 또한, 고려의 개국공신인 명장 유금필(庾黔弼)의 일족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목종이 남자인 유행간을 총애하며 그에게 정사를 일임하게 한 이유가 철없는 어린왕의 탈선이 아닌 천추태후로 대표되는 황보가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

 아무튼,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개국공신의 후손인 유행간을 영화 '왕의 남자'에서 처럼 광대로 만들어 버린 설정과 28일 방영분에서처럼 황제국의 칭호를 놓고 요나라와 50대 50으로 싸우는 장면은 제작진들이 얼마나 시청률을 의식하고 있는지 반증하는 부분인거 같아 조금은 아쉽네요. <어떤오후>

다음은 '고려사123권-렬전36-폐행1'에 나오는 '유행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庾行簡父 廉衛尉少卿

유행간의 부친 유품렴(庾稟廉)은 위위소경(衛尉小卿)이라는 벼슬을 지냈다. 
行簡姿美麗穆宗嬖愛有龍陽之寵.

유행간은 용모가 미려하여 목종(穆宗)의 사랑을 받은 남색(男色)의 대상이었다.
驟遷閣門舍人每宣旨必先問行簡然後行

벼슬이 합문 사인(閤門舍人)으로 뛰어올라갔으며 매양 임금이 지시할 일이 있으면 먼저 유행간에게 문의한 다음에 명령하였다. 

由是 寵驕蹇輕蔑百僚 指氣使
이런 데로부터 그는 왕의 총애를 믿고 매우 오만하였으며 백관들을 경멸하고 그들을 턱과 낯빛으로 지시하였다. 
 
近侍視之如王
이리하여 왕의 측근 신하들은 그를 왕과 다름없이 보았다. 

知銀臺事左司郞中劉忠正本渤海人無他技能亦甚寵於王.
지은대사 좌사랑중(知銀臺事左司郞中) 유충정(劉忠正)은 본래 발해(渤海) 사람으로 별다른 기능이 없으면서 역시 왕의 대단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 

王嘗以水房人吏分屬二人出入騶從僭擬無極
왕이 일찍이 수방(水房) 인원을 이 두 사람에게 나누어 소속시켰으므로 출입 때의 추종(騶從)이 참월하게도 왕처럼 의장을 차리고 다니었다. 
 
王不豫行簡忠正 直宿於內宰臣請入寢問疾
어느 때 왕이 병환이 났을 때 유행간과 유충정이 안에서 수직하고 있었는데 대신들이 침전에 들어가서 병 문안할 것을 청하니 

行簡傳旨曰: "體氣漸平取別日召見." 宰相再請不許.
유행간이 왕의 명령을 전하여 말하기를 “몸이 점차 편안하여 가니 다른 날 부르겠다”라고 하고 대신들이 재삼 청해도 듣지 않았다. 
 
王欲迎大良院君爲後行簡不欲迎立
왕은 대량원군(大良院君)을 맞이하여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유행간이 그를 맞아 세우려 하지 않았으므로 

王慮事洩戒蔡忠順勿令行簡知之.
왕은 일이 누설될까 두려워하여 채충순(蔡忠順)에게 유행간이 알지 못하게 하도록 주의시켰다.

及康兆作亂殺行簡等七人.
그 후 강조(康兆)가 반란(亂)을 일으켰을 때 유행간 등 7명을 죽였다.

[출처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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