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알천은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반응형

 17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죽은 천명의 대신해 신라의 왕이 되기로 결심한 덕만 앞에서 그녀를 새 주인으로 섬길 것을 맹세하는 알천의 모습이 그려졌는데요. 드라마에서 알천랑은 김유신의 가장 친한 벗으로 덕만이 왕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알천랑은 술종(述宗),임종(林宗),호림(虎林),염장(廉長),김유신(金庾信)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을 역임한 대단한 인물입니다.

알천은 본명이 소알천(蘇閼川,577년 ~ 686년)으로 신라국 제25대 진지왕(眞智王)2년에 아찬이었던 휴곤(休昆)의 5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때부터 영특하고 비범했던 알천은 화랑이 된 후에 그 탁월한 통솔력으로 수 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그가 활약하던 때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영토분쟁이 오랜기간 지속되던 때였으니 알천은 용춘, 필탄 등의 많은 장군들과 함께 전장을 호령하였습니다.

 또한, 서기636년 5월 선덕여왕 5년에 백제대군이 독산성(獨山城)을 침공할 때 알천은 백제의 우소장군이 이끄는 백제군을 크게 격퇴하는 전공을 세우며 선덕여왕의 신임을 받게되며 선덕여왕에 관한 대표 설화중 여근곡 이야기에서도 활약하게 되죠.

 어느 추운 겨울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여러 개구리들이 모여들어 3~4일을 그치지 않고 울어댔다. 사람들이 이를 괴상히 여겨 왕에게 물었더니 왕이 급히 각간 알천과 필탄 등에게 명하여 정예병 2천명을 뽑아 서쪽 교외로 나가 여근곡이란 곳을 찾으면 그곳에 반드시 적병이 숨어 있을 것이니 그들을 습격하여 모두 잡아죽이라고 하였다. 두 각간이 왕명을 받고 각각 군사 1천명씩 데리고 부산(富山) 기슭에 있는 여근곡으로 갔더니, 거기엔 백제의 군사 5백명이 숨어 있었으므로 모두 잡아 죽였다.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백제군사가 숨어들어왔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를 궁금히 여긴 신하들이 왕께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하여 선덕여왕은 개구리는 성낸 모양을 하고 있으니 군사를 나타내고, 옥문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며, 여성은 음인데 그것은 흰색이다. 흰색은 서쪽을 가리키는 것이니 서울 서쪽에 있는 여근곡에 군사가 숨은 줄 알았으며, 남성은 여성의 음문에 들어오면 반드시 죽게 되니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역시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후 각간(角干)직과 이찬(伊飡) 벼슬에 올라 내정에 적극 참여 하였으며 서기 647년에는 신라 최고관직인 상대등(上大等)에 오르고 술종(述宗),임종(林宗),호림(虎林),염장(廉長),김유신(金庾信)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의장이 됩니다.

서기 654년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진덕여왕이 승하하자 성골에서 왕위 계승자가 없을 경우에는 화백회의의 추대에 따라 의장인 상대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상례이니 조정 군신들은 모두 알천에게 왕이되어 올라 섭정(攝政)하여 줄 것을 간청합니다.

 하지만 알천은 77세의 노령을 핑계로 이를 완곡히 물리치고 김춘추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니 그가 바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입니다.

 구(舊)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배경에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한 신흥귀족세력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치적 책략이 숨어 있기도합니다.

 신라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까지 역임하고 왕의 자리를 양보하며 모든 짐을 털어버린 그에게도 한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의 나이 80이 넘도록 손자를 보지못한 것입니다. 이를 걱정하던 어느날 꿈에 소벌도리(삼한시대 진한의 왕족)가 나타나 진주로 거처를 옮기면 9저를 얻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진주로 내려온 알천은 드디어 기다리던 손자를 품에 안게 되는데요.

 이를 기뻐한 알천은 그의 이름을 소알천(蘇閼川)에서 소경(蘇慶)으로 개명까지 하며 손자의 탄생을 자축합니다. 이 후 꿈의 계시대로 알천의 후손은 9대에 걸쳐 9명을 장군을 배출하게 되며 알천 또한 109세의 천수를 누리다 여생을 마감합니다. <어떤 오후>

[참고자료 : 인터넷 백과사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