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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국선 문노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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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풍월주 문노(文弩, 536-606)의 어머니는 가야국의 문화공주로 어려서부터 검술을 잘하였고 의기가 있었던 그는 우리가 흔히 최고의 화랑으로 손꼽는 김유신마저 그를 추앙할 정도였습니다. (한편으로 문화공주가 왜인으로 왜국왕이 신라왕에게 바친 공녀로도 알려졌습니다.)

 문노(정호빈 분)가 아직 풍월주가 되지 않았던 시절, 17세의 어린 나이와 낮은 신분임에도 낭도들을 거느리고 백제, 고구려, 북가야를 잇달아 쳐 큰 공을 세웠으나 이를 인정받지 못하자 이에 불평하는 부하들이 꾸짖었을 정도입니다.

 또한, 어머니의 나라 가야국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다함이 함께 가서 토벌하기를 청하였으나 "어찌 어머니의 아들이 되어서 외조부 나라의 백성을 괴롭힐 수 있겠는가" 하고 끝내 가지 않았으며 이에 감동한 사다함은 "문노는 진정 나의 스승은 의인이다."하고 가야국에 들어가서 함부로 살해하지 말라고 부하들을 경계시키어 문노의 뜻에 보답하였습니다.

 이렇듯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오직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는 문노는 화랑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화랑세기에'는 적어도 미실과 문노는 적이 아니었다는 것인데요.

 5대 풍월주인 사다함의 뒤를 이어 세종(미실의 남편)이 6대 풍월주가 되자 문노는 자신의 낭도들을 세종에게 속하게 합니다. 이에 세종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할 때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으나 어머니가 가야국 출신인 탓으로 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여길 정도 였으니 말이죠. 

 또한, 미실의 주도로 진지대왕이 폐위되자 문노는 그공으로 아찬이 되었으며 이후 미실의 총애를 받아 제8대 풍월주가 되었습니다. 풍월주가 된 문노는 그 명성을 더욱 크게 떨쳐 낭도들이 서로 권면하여 그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 문노는 풍월주로 있은 지 3년만에 비보랑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국선이 된 후에야 그가 사랑했던 윤궁낭주와 혼인을 합니다. 

 윤궁낭주는 거칠부의 딸로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태자사이에서 딸을 낳고 동륜이 죽은 후 5년을 과부로 살았던 인물입니다. 윤궁낭주의 어미는 미실의 아비인 미진부공의 친누이였으니 미실과는 종형제간이 됩니다. 문노가 윤궁낭주와 혼인한것도 9대 풍월주 비보랑이 미실에게 윤궁낭주를 힘껏 권해 문노의 아내로 삼게 한 것이며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문노가 풍월주가 된 데에는 윤궁낭주와 미실의 관계가 돈독했던 탓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노에 대한 미실의 총애는 그의 뛰어난 리더쉽으로 화랑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규합하기 위했던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며 이러한 미실의 총애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문노와 미실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공(문노)이 평소에 미실과 맞지 않았다. (이에) 윤궁(윤궁낭주)이 간하기를 “군(君)은 세종전군의 신하인데, 미실궁주를 반대함은 옳지 않습니다. 전군(殿君)이 궁주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는 것은 군(君)이 나를 목숨처럼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군의 낭도가 만약 군을 옳다고 하고 나를 그르다고 하면 군은 어떻겠습니까?”하니, 공이 말하기를 “선모는 궁주와 같이 잘못이 없으니 낭도들이 어찌 비난하겠습니까?”하였다. 

  윤궁이 이에 힘써 미실의 잘못을 감싸며 말하기를 “사람이 모두 장단과 과실이 있는 것은 형세가 부득이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군이 오랫동안 전쟁터 시석(矢石)에 있어서, 오직 강철 같은 심장만을 법으로 삼고 처자의 즐거움이 없는 것은 세상과 통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군의 아들을 가졌는데, 군이 한 마음으로 뜻을 굳게 지키고 권문에 거스른다면 이 뱃속의 아이는 장차 어떤 처지에 있겠습니까. … 아이의 좋은 아버지로서 나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하였다.

 공이 탄식하며 “… 의지와 기개로 선모를 받드는데, 선모는 세상일로 나를 감싸는 것 … 손은 사사로움입니다. 정(情)이 사사로이 행해지게 되면 의리가 감추어지게 되고, … 그렇지만 나의 선모가 신(臣)에게 허락한 뜻은 가히 죽음으로써 맹세한 것입니다. 차라리 … 무리를 … 할지언정 선모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야 하겠소?” 하니, 

  윤궁은 웃으며 말하기를    “정이 아니면 군과 내가 어찌 색사(色事)로써 서로 범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의(義)는 정(情)에서 나오고 정은 지(志)에서 나오니, 세 가지는 서로 반대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큰 정은 의가 되고 큰 사사로움은 공(公)이 된다고 했습니다. 만약 무리에게 사사롭지 않으면 무리를 거둘 방법이 없습니다. 군은 어찌 일찍이 사사로움이 없겠습니까. 군과 더불어 동침한 밤에 나는 대철우(大鐵牛) 꿈을 꾸었는데, 반드시 호랑이 새끼를 낳을 것입니다. 그대의 영웅스러움으로써 어찌 좋은 씨앗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대중 또한 사람의 자식입니다. 남의 자식은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의가 아닙니다. 자기를 손상시켜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역시 사사로움에서 나옵니다. 군과 더불어 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정의 순수함입니다. 무리들이 군에게 의지하는 것은 정이 섞인 것입니다. 청컨대 내 아이의 좋은 아버지가 되어 나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하였다. 

  공이 크게 깨달아서 말하기를 “선모는 진실로 성인입니다. 신은 어리석을 뿐입니다”하였다. 이에 정이 더욱 두터워졌다. 공은 굽혀 미실을 섬기고 설원을 받아들여 주었다. [화랑세기 필사본 中]


 위에서 처럼 미실과 문노의 의견대립은 있었으나 드라마에서 처럼 문노가 처음부터 진평왕과 천명쪽 사람은 적어도 아니었으며 진지왕의 폐위 작업에도 동참한 문노는 부인인 윤궁낭주의 뜻에 따라 미실과 그녀의 남편인 세종을 끝까지 보필했던 것입니다.

 한편, 문노와 윤궁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대강, 충강, 금강, 윤강, 현강, 신강이 있었으며 이 자식들은 모두 크게되어 이 중 대강과 금강은 후일 재상이 되었습니다. <어떤오후>

[참고자료 : 인터넷 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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