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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미실의 난 최대 변수는 '주진(朱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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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실파의 치밀한 사전 계략으로 화백회의장을 무력으로 침범한 유신, 이를 반역으로 간주하고 반역자를 진압한다는 빌미로 반란을 일으키는 미실.

드라마 ' 선덕여왕'은 미실 최후의 순간으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데요. 하지만 완벽한 사전 계략으로 지금까지의 상황으론 도무지 미실의 패배가 예측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바로 궁에서 미실의 반역음모가 조금씩 진행되는 동안 궁밖에선 상주정의 주진이 거느린 5,000명의 정예병사가 포진해 있기 때문인데요.

드라마에서는 주진(朱珍)이 필탄의 아버지로 등장합니다만 필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아버지가 주진이라는 근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필탄 (弼呑) 생몰년 : *(589?)~*(651?)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장군. 관등은 각간(角干)이었다. 선덕왕 5년(636)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는데 선덕여왕이 이를보고 말하길 ‘두꺼비는 성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건대, 서남쪽 변경에 이름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니 혹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에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명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갑자기 쳐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 신분상으로 보아 진골 출신 귀족으로 보이며 성씨도 김씨(金氏)일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주진(朱珍)은 누구일까요? 그에 대해서도 역사는 삼국사절요에 단 한번 소개되는 인물입니다.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제 6 권 무진년(戊辰年; 548)
신라 진흥왕 9년, 고구려 양원왕 4년, 백제 성왕 26년 

 봄 정월 고구려왕이 동예(東濊) 군사 6천 명의 지원(支援)을 얻어 백제의 한수(漢水) 북쪽에 있는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니 백제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將軍) 주진(朱珍)에게 명하여 갑병(甲兵) 3천 명을 이끌고 구원하게 하였다. 주진이 밤낮으로 갑절의 길을 걸어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싸워 크게 깨뜨렸는데 죽이고 노획한 것이 매우 많았다.

(삼국사 절요 : 조선 전기에 서거정(徐居正) 등이 편년체(編年體)로 편찬한 단군조선에서 삼국까지의 역사서.)

 재미있는것은 드라마에서 필탄의 아버지로 갑자기 등장한 주진(朱珍)의 활약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0일 방송분에서 조제감면제도를 주장한 덕만을 알현하는 주진(朱珍)의 모습이 나왔는데요. 물론 상대등 세종이 덕만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보낸 것이지만 주진(朱珍)입장에서는 미실파와 덕만파의 의중을 모두 판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서 언급한 거처럼 미실의 반란은 성공할 수밖에 없을 듯 보입니다만 현재까지 미실의 든든한 배경으로 포진해있는 주진(朱珍)의 심경변화가 결국 미실의 최후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어떤오후>

- 용어 해석 : daum, naver 백과 사전
[내용 출처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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