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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선덕여왕, 칠숙과 석품의 난! 그 전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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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선덕여왕' 16일 방영분에서는 미실의 우직한 충신으로 미실이 죽자 석품과 함께 미실의 마지막 유언을 거부하고 덕만을 죽이려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덕만은 미실의 세력을 규합하기위해 신국을 위태롭게 했던 반란을 '미실의 난'이 아닌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부르게하는데요. 과연 '칠숙과 석품의 난'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건이었을까요?

 드라마 초반 부터 미실의 그림자처럼 그녀를 호위하던 칠숙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가상인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칠숙은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실존인물입니다. 물론 덕만이 천명과 쌍둥이 자매가 아니었고 먼 이국땅으로 도망가 소화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사실 또한 허구이기에 미실의 명을 받고 이들의 쫓아간 칠숙의 활약 또한 드라마적 설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미실과 인연이 있었던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관등이 이찬(伊飡)에 이른 진골 출신 귀족으로 보이며 성씨도 김씨(金氏)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칠숙(柒宿,?~631)
신라의 대신이며 진평왕(眞平王)때 관등이 이찬(伊飡)에 달했다. 진평왕이 후계자로 공주 덕만(德曼, 선덕여왕)을 옹립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덕만의 왕위계승에 반대하여 아찬(阿飡) 석품(石品)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처형당했으며, 9족(族)이 멸족당하였다. 이후 석품은 백제로 도망쳤다가 가족을 데리러 다시 신라로 되돌아오다가 잡혀 석품 역시 9족이 멸족당했으며 이로 인하여 칠숙의 난이 완전히 진압되었다.  <다음 백과사전>

 위에서 처럼 칠숙은 상대등 다음의 고위관직인 이찬(伊飡)까지 지냈던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석품 또한 화랑을 지냈는지 알 수 없지만 신라 여섯번째 관등인 아찬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진평왕 53년(631) 여름 5월에 이찬 칠숙(안길강 분)과 아찬 석품이 반란을 꾀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왕이 반란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에서 목을 베고 아울러 그의 구족을 멸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그와 함께 반란에 동참했던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와 자식을 보고 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에까지 돌아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결국 잡혀서 처형되었습니다.

 '화랑세기'는 이 사건이 좀더 구체적으로 나오는데요.
염장공은 유신공의 부제로서 춘추공을 부제로 삼아 지위를 넘겨주었다. 염장공은 덕만에게 몰래 붙어 칠숙의 난을 다스리고 공으로 발탁되었다. 선덕이 즉위하자 조정에 들어가 조부의 영이 되어 김유신과 김춘추에게 재물을 공급하여 주었고 또한 사적으로 치부를 하였다. <화랑세기 17세 풍월주 염장공편>

  염장공은 보종과 미실의 측근이었으나 덕만이 왕이 될것이 유력해지자 이들을 배신합니다. 염장공의 배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진평왕이 죽기 1년 전 이찬 칠숙(안길강 분)과 아찬 석품이 비리에 연루되어 곤경에 빠지자 평소에 믿고 의지했던 염장공에게 반란에 동참하자 제의하는데요. 염장공은 흔쾌히 이들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만 이내 배신하고 이사실을 덕만에게 알리고 김유신이 이 들을 잡아 처단합니다.

이로 인해 이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덕만은 신라최초의 여왕체제를 순탄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네이버, 다음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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