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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동이, 깨방정 숙종의 아홉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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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화 드라마 '동이'에서 동이가 장악원 여비에서 감찰부 궁녀로 파격적인 출세를 하면서 드라마는 숙종을 둘러싼 세 여인 (장희빈, 인현왕후, 동이)의 경쟁구도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제19대 왕(1674~1720)으로 재위 기간 극에 달했던 노론·소론의 당쟁을 이용하여 양 난 이래 손상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신권에 대한 왕권의 우위를 확보하려고 계산할 할 만큼 치밀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입니다.

 신하들에겐 엄격한 군주였으나 여인들에게 다정다감했던 숙종은 숙원 장씨(장희빈)를 총애하여, 서인들이 이를 반대하자 송시열 등을 유배시키고 왕비였던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붕당정치가 절정을 이루던 시절, 나라를 피비린내나는 환국의 소용돌이로 몰았지만, 여인들 앞에선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숙종의 여인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숙종은 3명의 왕비를 포함하여 모두 9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자녀는 6남 2녀를 두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동이(한효주 분)와 장옥정(훗날 희빈 장씨·이소연 분), 인현왕후(박하선 분)만 등장을 하죠.



1. 인경왕후 김씨 (仁敬王后, 1661~1680)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70년 열 살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습니다만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인물입니다.

슬하에 공주 2명이 있었으나 모두 일찍 죽었으며, 그녀 또한 천연두를 앓다가 8일 만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합니다.

 이후 젊은 나이에 승하한 인경왕후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인현왕후 때문에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과 희빈 장씨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이 대립하는 계기가 되어 후일 인현왕후가 폐위되는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등 조선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2.인현왕후 민씨 (仁顯王后, 1667~1701)
 숙종의 초비 인경왕후가 죽은 후 1년 후에 대비 김씨와 서인세력의 추천으로 중궁으로 뽑힙니다. 하지만, 가례 초기부터 숙종이 궁인 출신 후궁 장씨(張氏)의 미색(美色)에 혹하여 후궁 장씨를 총애하고 왕후를 멀리하게 됩니다.


 1688년 후궁 장씨(소위 장희빈)가 아들 균(후일의 경종)을 낳자 숙종은 이 왕자를 원자를 정하고자 했으나,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들은 원자정호를 뒤로 미룰 것을 주장하는데요. 이 문제는 결국 기사환국으로 이어져 1689년 서인들이 쫓겨나고 남인들이 집권하였으며 그녀 역시 폐서인되어 안국동 사가로 내쳐집니다.

그러나 6년 후인 1694년 다시 숙종이 남인들을 몰아내고 서인들을 기용한 후(갑술환국/4월 1일), 민씨는 환궁 비망기를 받아(4월 9일), 환궁한 뒤(4월 12일) 왕비로 복위되고,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됩니다.

하지만, 복위된 지 8년 만인 1701년 민씨는 사망합니다. 민씨 사망 후 숙종은 왕세자의 생모 희빈 장씨에 게 자결하라는 비망기를 내리고 사사시킵니다. 예의바르고 정숙했다고 하나 장희빈에게 매를 드는 등 단호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전해집니다.

3.인원왕후 김씨 (仁元王后, 1687~1757)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인현왕후 민씨가 죽은 후 궁궐에 들어가 이듬해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인경왕후처럼 천연두를 앓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였다 전해지며 소생은 없습니다.

4. 희빈 장씨 (禧嬪 張氏 1659~1701)
 - 서1남 : 20대 경종대왕 (景宗大王, 1688∼1724)
  - 서2남 : 성수(盛壽) (1690년 9월 출생, 10일뒤 죽음)

 본명은 장옥정(張玉貞)으로 중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미가 여종이었기 때문에 천인의 신분이었습니다.


 역관으로 재력가였던 삼촌과 남인 세력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장렬왕후(인조의 계비)전의 나인이 됩니다. 입궐하자마자 빼어난 미모로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사실이 명성왕후(숙종의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궁에서 쫓겨납니다.

 명성왕후가 죽자 다시 궁으로 입궐한 장옥정은 후궁이 되었으며 이때부터인현왕후와 갈등하게 됩니다. 당시 장옥정은 남인 세력이었고 인현왕후는 정치 실세였던 서인을 대표했기에 이 두 사람의 대립은 극에달합니다. 하지만, 숙종과 장씨와 사이에서 왕자 균을 낳게 되고 균은 바로 원자로 책봉됩니다. 이때 세자책봉을 반대했던 송시열이사사되는 등 이른바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는 폐위되고 서인들의 세력이 약화되기에 이릅니다.

 왕비가 된 후 오빠인 장희재와 전횡을 일삼던 장씨는 갑술환국으로 다시서인들이 정권을 잡자 희빈(후궁)으로 강등됩니다. 숙종 27년 인현왕후가 죽자 희빈 장씨가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되어 숙종으로부터 자결을 명령받아 죽음을 당합니다.

5. 숙빈 최씨 (淑嬪 崔氏,1670~1718)
  - 서3남 : 영수(永壽 , 1693년 10월 출생, 2개월 뒤에 죽음)
  - 서4남 : <21대 영조대왕> (英祖大王, 1694∼1776)
 - 서5남 : 子(이름없음, 죽음)

 숙빈 최씨는 미천한 출생으로 그녀에 대한 기록은 숙종에 의해 후궁이 되면서부터 확인되고 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1670년(현종 11) 11월 최효원의 딸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랐는데,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이 영광군수로 발령을 받고 당시 8살이던 인현왕후와 함께 부임하러 가는 도중 거지모습의 한 어린 소녀를 거두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동이입니다.

 이후 민유중에 의해 인현왕후와 함께 자라던 동이는 7살 되던 때에궁궐에 들어갑니다.  무수리로 궁에 입궐한 궁녀 동이는 인현왕후가 숙종의 제1계비로 뽑혀 궁에 들어오자  그녀를 보필하게 되고,8년 뒤 인현왕후가 폐출당할 때 그녀를 위한 기도를 올리다가 숙종에게 발견되어 성은을 입게 되고, 곧이어 숙원·숙의·귀인을 거쳐숙빈이라는 정1품의 빈까지 오르게 됩니다.

6. 명빈박씨(榠嬪 朴氏, ? ~ 1703)
 원래 상궁(尙宮)이었다가 숙종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지만, 승은을 입은 지 10여 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에야 숙원(淑媛)에 책봉되었고, 이듬해인 1699년(숙종 25년)에는 단종의 복위를 기념하여 숙의(淑儀)에 진봉되었습니다. 이어 귀인에 올랐다가 1702년(숙종 28년) 음력 10월 18일에 정1품 빈의 자리에 올라 명빈(榠嬪)이 됩니다.

하지만
명빈(榠嬪)에 오른지 1년도 안되서 사망합니다. 당시 그녀가 낳은 유일한 아들인 왕자 헌(또는 훤, 昍)이 겨우 5살이었는데, 왕자군(君)으로 책봉을 받지 않은 상태여서 상주 노릇을 할 사람이 없자, 숙종은 같은해 9월에 왕자 헌을 연령군(延齡君)에 봉하여 그녀의 상주 노릇을 하게 하였습니다.

7.영빈 김씨(寧嬪 金氏, 1669년-1735)
 1686년(숙종 12년) 입궐, 그해 음력 3월 28일에 숙의에 책봉되어 노비 150명을 하사받았습니다. 그녀는 숙종의 다른 후궁인 희빈 장씨나 숙빈 최씨 등과는 달리 명문가의 여식으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한 후궁으로 입궁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소의(昭儀)로 진봉되고 곧이어 귀인(貴人)에 봉해집니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이 인현왕후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서인 집안이었던 탓에, 인현왕후가 폐출되면서 그녀도 같이 대궐에서 쫓겨났으며,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같이 복위되었고, 1702년(숙종 28년)에 영빈(寧嬪)에 봉해졌습니다.

 1720년(숙종 46년)에 숙종이 사망하자 그녀는 관례에 따라 대궐에서 나가 살게됩니다. 이때  경종은 그녀가 나가서 살 집을 크게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그 명을 거두라는 상소가 빗발쳤던 적이 있었는데 경종은 이 상소를 물리치고 명대로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영조를 특별히 아꼈던 것으로 전해지며 영조도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매우 따랐습니가.1735년(영조 11년)에 67세를 일기로 사망했으며, 그녀가 사망하자 영조는 깊이 애도하였습니다. <어떤오후>


[참고자료 : 인터넷 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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