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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동이, 세자에 대한 숙종의 절대 신임은 사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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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일 방영된 MBC 월화드라마 '동이'에서는 세자와 연잉군의 문제로 숙종은 모든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고심 끝에 편전 회의를 소집한 숙종은 다음 보위에 오를 사람은 오직 세자뿐이라고 공표하고 이와 동시에 숙빈 최씨(동이)를 사가로 출궁시키라는 명을 내립니다.


 또한, 선위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세자가 바로 왕위를 잇고 후사를 볼 수 없는 세자의 뒤를 연잉군이 잇게 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숙종의 이런 결단은 세자만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연잉군과 동이 그리고 세자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최선책이기도 했던 것이지만, 세자에 대한 숙종의 절대 신임은 드라마상에서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일 뿐으로 실제 역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기도 합니다.


  세자(훗날 경종)는 1690년, 3살에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4년 후인 1694년,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어미인 장옥정은 빈으로 강등되었고 1701년 결국 어머니가 사사되는 충격을 14세의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시련을 겪습니다.

 문제는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고 숙종에게 애원한 것인데요. 인정에 끌린 숙종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게 되고 장희빈과 세자는 마지막으로 대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의 끝자락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장희빈은 이미 이성을 잃은 뒤였습니다. 한때는 내명부 최고의 자리인 중전이었고 세자의 어미인 자신을 사사시킨 숙종에 대한 증오가 불타고 있었던 것이죠.

 급기야 장희빈은 안고 있던 세자의 생식기를 세게 잡아 당기며  '내 자식이 다시는 이씨의 자손을 못 보게 할테다'며 저주를 퍼붓다 강제로 사약을 먹고 죽게 되죠. 물론 이 내용은 야사(野史)로 전해지는 것이지만, 당시 14세였던 세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이 사건 이후 남성구실을 제대로 못 하였으며 원래부터 병약했던 터에 그 병세는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집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세자가 병약하여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점을 숙종은 장희빈을 사사시킨 이 후 20년 가까이 크게 근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심끝에 내린 결단이 세자의 왕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였는데요.


  숙종은 1716년, 이른바 병신처분을 통해 소론을 배척하고 노론을 중용하게 됩니다.
(정유독대 : 송시열과 윤증의 대립에서 숙종이 송시열이 옳다고 판단한 사건 아버지를 욕한 스승을 두고 아버지를 따라야하나 스승을 따라야 하나 라는 난해한 이데올로기 문제)

 그로부터 1년뒤 숙종은 노론의 영수인 이이명과 독대를 하면서 정국은 또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정유독대라 말하는 이 사건은 숙종이 병약한 세자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연잉군을 지지하던 노론의 영수인 이이명과 독대를 하게 되는데요.

 이이명과 숙종의 비밀회담 이후 이이명은 갑자기 세자 대리청정 임금에게 주청하게 됩니다. 이는 대리청정을 한 세자의 단점을 찾아 그를 폐위시키고 연잉군(훗날 영조)를 새로운 세자로 만들겠다는 숙종의 계획이 들어난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 드라마에서 처럼 세자에 대한 숙종의 절대신임을 사실이 아닌 것이죠.

 숙종의 이같은 계획에도 세자는 대리청정을 문제없이 처리하였으며 한편으론 숙종의 병환과 소론의 강력한 반발로 세자 교체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숙종이 승하한 후 세자는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왕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 제20대 왕 경종입니다.

하지만, 병약했던 경종은 1724년 8월 재위 4년 2개월 만에 37세를 일기로 후사없이 사망하게 되며 그 뒤를 연잉군이 물려받으니 21대왕 영조인 것이죠.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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