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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 반촌을 알면 200%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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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반포일 이전 이레 동안 궁궐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 살인의 이면에 감춰진,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인 한글 창제 추진파와 이에 맞서는 반대파 사이의 대립과 음모를 치열하게 그려낸 소설로 조선의 성군 세종 이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극인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그동안 사극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반촌(泮村)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눈길을 끄는데요.

 지난주 방송에서는 밀본의 정도관이 이방원을 피해 숨어든 곳으로 등장했고, 19일 방송분에서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집현전 학사 허담의 검안을 하기 위해 등장하는 가리온(윤제문) 이라는 조선 최고의 백정도 반촌에서 백정을 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반촌(泮村)은 조선 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사역 인들이 거주하던 성균관 동, 서편에 있던 동네를 말합니다.


 고려 말 문성공 안유(文成公安裕)가 자기 집안의 노비 1백여 명을 희사하여 학교를 부흥할 것을 도운 데서 비롯된 곳으로 조선 시대에 한양으로 천도하여 국학(國學)을 옮기자, 노비 자손이 수천 명이 되어 반수를 둘러싸고 집을 짓고 살아 동리를 이룹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을 반촌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곳 사람들은 반민 또는 반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뒤 반민은 자신을 안향이 희사한 노비의 후손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398년(태조 7년) 성균관건물이 처음으로 완성되었을 때에는 사역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반촌은 형성되지 않았고 태종 때 우리나라 성리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안 향'이 학교의 번창을 위해 성균관에 전답 1,000여 묘(畝)와 노비 300명을 성균관에 기증하였고 그 노비들은 성균관의 각종 일을 맡았기 때문에 성균관 근처에 노비들이 사는 마을이 이루어졌을 거라 추정합니다.

 또한, 반촌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 성종 때로 성균관 입구의 민가를 철거하고, 성균관을 감싸고 흐르는 반수(泮水)의 서쪽을 경계로 삼았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니 드라마의 배경인 세종시대의 반촌은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을 거라 판단됩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밀본의 정도관이 이방원을 피해 반촌으로 숨어들자 이곳에 군사를 쉽게 보내지 못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성균관은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고 공자를 배향하는 신성한 곳이었으므로, 순라군과 의금부의 이속들조차도 감히 성균관을 위해 존재했던 반촌에는 쉽게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 조선 시대에 금했던 여러 일, 곧 금란(禁亂)을 범하더라도 반 촌에 들어가 조사할 수 없었는데요. 금란이란 조선 왕조 시대에 단속 대상으로 삼았던 소나무 벌채 금지, 임의 도살 금지, 양조 금지인데, 이것을 범한 범인이 반촌에 숨어 버리면 추적이 불가능했다 합니다.


- 반촌의 성격

1. 반촌은 기본적으로 반민이 사는 마을이다. 반민이 모두 안향이 희사한 노비의 후손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조선 말까지 그들은 물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믿었다고 한다.

2. 둘째로 성균관 유생의 하숙촌이다. 성균관 유생은 원칙적으로 성균관에 딸린 재(齋:기숙사)에 서 먹고 자야 했다. 그러나 성균관에 숙식할 곳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이 성균관 밖 반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성균관의 식당 정원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균관의 규칙이 너무 딱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과거 때 시험을 치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주인을 잡아 머무르는 여관촌 역할도 하였다.

3. 셋째로 성균관에서는 유학 경전이 아닌 다른 사항, 예컨대 천주교 경전 등에 대한 담론은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일종의 서클 활동 장소로서 반촌이 성균관 유생에게 유용한 곳이었다. 반촌과 관련한 사건으로 정약용의 천주교 학습 사건이 있다.


  반촌 거주민은 반인(泮人),관인(館人)이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6개월마다 번(番)을 나눠 입역하였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각기 상업 등의 생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주로 쇠고기 장사와 가면극 연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성균관 전복(典僕)인 반인 중 일부는 현방(懸房), 즉 푸줏간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재인(宰人)이라고 불린 백정들이 도살업에 종사하였는데 드라마에서 집현전 학사 허담의 검안을 하기 위해 등장하는 가리온이라는 인물도 이에 속합니다.


 재인은 성균관의 제사에 소용되는 희생(犧牲)을 잡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으며, 현방(懸房) 혹은 다림방이라고 하는 푸줏간을 독점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도 살업은 반인들의 가장 중요한 생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촌도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성균관의 기능이 줄어들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듭니다. 조선 초기 성균관은 학문연구와 교육을 통해 지배이념을 보급하고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를 양성함으로써 왕조체제의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면서 유교 학풍이 과거를 위한 학문보다 심성 수양과 의리 실천을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고, 서원을 통해 그러한 학풍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성균관 교육의 부진을 가져오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말죠.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성균관이 여전히 국가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존속했지만, 갑오개혁을 통해 과거제가 폐지되면서 성균관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생겼으며, 국권침탈에 의해 성균관의 교육은 중단되었고, 명칭도 경학원(經學 院)으로 바뀌게 되면서 반촌도 해체되었으나 반인은 예전처럼 도살업에 종사합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그의 천주교 활동의 중심이 될 만큼 당시에 상상하기 어려운 비밀이 숨겨져 있던 곳이 반촌입니다.

  따라서 연쇄 살인을 추적하는 짜릿한 전율이 있는 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의 주요배경 중 한곳이 반촌임에 우리는 다음 이야기를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오후>


다음 view 메인에 노출이 되었네요. 많은 성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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