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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왕은 사랑한다, 충렬왕과 충선왕(왕원) 비운의 부자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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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새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는 고려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혼혈왕인 충선왕의 사랑이야기를 소재로한 팩션 사극입니다.


 매혹적인 아름다움 이면에 뜨거운 욕망과 정복욕을 품은 세자 왕원(충선왕, 임시완 분)과 강직한 품성, 사랑의 열정을 지닌 왕족 왕린(홍종현 분)의 브로맨스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은산(임윤아 분)의 이야기를 그리는데요.


해당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혼혈왕인 충선왕.

역사는 그와 부친이었던 충렬왕, 모친이었던 원성공주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다.

건조한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조국이 달라서 갈등이 깊었고, 역사에 휘둘려 마음껏 사랑하기 어려웠던 가족이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난 충선왕, 왕원에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참으로 아름답고 처연한 인연이 있었다.


'왕은 사랑한다'의 역사속 이야기를 살펴보기 전 드라마에서 제공하는 인물관계도를 먼저 확인해 봅니다.



충렬왕 (정보석 분)


 고려 25대 충렬왕(정보석 분)의 정비인 원성공주(장영남 분)은 징크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의 딸로 제국대장공주로도 불립니다.


충렬왕(정보석 분)은 원 황실과 처음으로 통혼한 고려왕으로 앞서 언급한것 처럼 원 세조 쿠빌라이의 사위입니다. 몽골 침략 후 충렬왕의 부친인 원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원에 통혼을 요청하였고, 충렬왕은 연경에 들어가 세조의 딸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와 혼인하게 되는데요.


 충렬왕 이후로 고려왕의 묘호는 조(祖)나 종(宗)과 묘호(廟號)를 사용하지 못하고, 충(忠)이라는 돌림자를 사용해야 했으니, 바로 원 제국을 모시는 일개 부마국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한 충렬왕은 원종이 죽은 뒤 고려에 돌아와 왕위에 오릅니다.


그해 10월 원나라 세조의 강요로 일본 정벌을 위한 동로군을 파견하였으나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으며, 7년 후에도 원나라 병사와 더불어 제2차 일본 정벌에 나섰으나 역시 실패합니다.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과 왕비의 죽음 등으로 정치에 염증을 느껴 충렬왕 24녕에 세자(충선왕)에게 선위한 뒤 물러나 원나라에 갔는데, 계국대장공주의 무고로 충선왕이 국새를 빼앗기는 등의 음모사건이 발생하자 선위 7개월 만에 다시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왕은 그 후 음주 가무와 사냥으로 소일,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재위 34년 만에 사망하는데요. 


부왕의 사망 소식을 들은 충선왕(임시완 분)은 그다음 달인 8월에 급히 귀국하여 상을 치르고 10년 만에 왕위를 되찾게 됩니다.




왕원, 충선왕 (임시완 분)


충선왕 (임시완 분)은 고려의 제26대 왕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 이름은 원(謜)이었으며 즉위 후 장(璋)으로 고칩니다. 충렬왕(정보석 분)과 제국대장공주(장영남 분)의 맏아들로,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이기도 합니다.


  충선왕은 고려의 왕인데도 원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간이 고려에 있었던 기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서 고려에 대한 애착이 깊지 않았습니다.


 1277년 세자로 책봉되고 이듬해 원나라에 갔으며, 쿠빌라이 칸의 증손녀 계국대장공주를 정비로 맞게 됩니다. 카다안의 침입 당시에는 쿠빌라이 칸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1297년 돌아왔는데 학문을 좋아했는지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책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고 전해집니다.


 사실 충선왕이 고려로 돌아온 이유는 어머니 제국대장공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데 충선왕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당시 충렬왕의 후궁으로 총애를 받으며 날뛰던 무비(無比)의 소행이라 생각하여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됩니다.


 무비에게 정신이 팔렸고 백성은 굶고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큰 돈을 들여 사냥과 연회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아버지 충렬왕은 부인인 제국대장공주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국대장공주의 눈을 피해 무비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때문에 더욱 자주 사냥을 나갔으며, 부자 간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고, 정치에 뜻을 잃은 부왕 충렬왕이 양위 의사를 밝히자 1298년 즉위하게됩니다.


 즉위한 이후 혈기 넘치는 젊은 국왕은 원나라 간섭의 영향으로 인한 폐단을 개혁하고 구습을 철폐하거나 관제를 개혁하였으며 무엇보다 원의 밑에서 권세를 누리던 권문세가의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주목할 만한 개혁정책을 의욕적으로 실시해 나갑니다.


 그러나 권문세가의 힘은 막강해서 일련의 개혁정책은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고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와 권문세가의 모략으로 인해 결국 충선왕은 즉위 7개월 만에 원에 의해 폐위당하고 원나라로 소환되는데요.


 이후에도 충선왕에게 원한을 품은 왕유소 등은 충선왕을 계속 모함하여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 사이를 이간질했으며 충선왕을 아주 폐하려 합니다.


 1307년 원성종 테무르 칸이 죽고 황제 자리를 둔 정쟁이 발생했는데 충선왕은 여기에 적극 개입하는데요. 그는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라 열손가락 안에 드는 황족의 가까운 인척이었기에 황위 분쟁에서 상당한 발언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모략한 왕유소 일당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충선왕은 그 뒤 같은 해 아버지 충렬왕이 승하하자 고려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고려의 국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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