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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이산]조선 최고의 건축물, 수원화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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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2년 홍문관 수찬에 임명된 30세의 정약용은 당시 단순한 토축(土築)된 읍성(邑城)인었던 화성(수원화성)에 정조의 명으로 성곽을 새로이 축조하라는 명을 받고 왕실 서고인 규장각에 비치된 동서양의 수많은 서적과 당대 선진적인 실학자들의 경륜을 참고하여 화성축성 개시를 1년여 앞둔 1792년 겨울 계획안을 정조(正祖)에게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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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계획안은 모두 5 편으로 성설(城說), 옹성도설, 포루도설, 현안도설, 누조도설로 되어 있는데요. 이중에서 성설은 성의 전체 규모나 재료, 공사 방식 등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적었으며 옹성도설, 포루도설, 현안도설, 누조도설은 성벽에 설치하는 각종 시설에 대한 설명입니다.

☞ 다음은 정약용 제시한 성설(城說)의 주요 내용입니다.

1. 규모
성의 둘레는 3,600보(약 4.2㎞)로 하고 성벽 높이는 2장 5척(7.75m임)

2. 재료
벽돌성이나 토성(土城)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벽돌 굽는 데 익숙하지 않고 토성(土城)은 겉에 석회를 바른다고 하지만 흙과 석회는 서로 달라붙지 않아서 겨울에는 얼어터지고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어서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돌로 성을 쌓아야 함.

3.호참(壕塹:참호)
성을 쌓을 때는 안과 밖을 두 겹으로 쌓는 협축)이 최선이지만 우리는 이런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기에 안쪽 성)은 산에 의지하고 평지에서는 흙을 높여야 하는데 이 흙은 호(壕)를 파서 얻을 수 있음.

4.기초(基礎)
수원은 냇가에 흰 조약돌이 많으므로 이를 캐어서 쓰는데, 구덩이를 넓이 1장(丈),깊이 4척(尺) 정도로 하여 얼지 않도록 하며, 1보(步)마다 팻말을 세우고 사람들을 모집해서 1단(段)씩 메워 나가는데, 1단(段)에 품삯을 얼마씩 주기로 하고 떠맡기면 그 사람이 스스로 계산하여 지면 질수록 수입 되므로 빨리 힘써 일할 것임.

5.벌석(伐石 : 돌 뜨기)
돌은 산에서 다듬어서 무게를 덜고 실어 나르는데 편하게 하는데, 돌 등급을 매겨 깎고 자르는 데 규제가 있게 하며 큰 것은 한 덩이에 한 차(車), 그 다음은 두 덩이에 한 차(車), 작은 것은 세 덩이 혹은 네 덩이에 한 차(車)로 날라서 성 1보(步)를 쌓는데 일정한 용량을 공급하도록 하며, 큰 돌은 하층에, 중간 돌은 중층에, 작은 돌은 상층에 놓아 대소를 가려 점차(漸次)로 재료를 맞게 씀.

6. 치도(治道 : 길 닦기)
수레가 다니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길을 닦아야 함.

7. 조차(造車 : 수레 만들기)
기존 큰 수레는 바퀴가 너무 높고 투박하여 돌을 싣기 어렵고 바퀴 살이 약하여 망가지기 쉽고 비용이 많이 들며, 썰매는 몸체가 땅에 닿아 있어서 밀고 끄는 데 힘이 많이 소비되는 형편이므로 새로 유형거(遊衡車 : 수레의 짐 싣는 바닥판과 바퀴 사이에 복토(伏兎)라는 장치를 달아서 바닥판이 항상 수평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 원리(原理)임)라는 수레를 고안(考案)해서 쓰도록 함.

8. 성제(城制)
성이 무너지는 것은 배가 부르기 때문이므로 한 가지 방법을 강구하자면, 성의 높이와 두께를 3등분하여 성을 쌓을 때 아래 2/3까지는 점점 안으로 좁혀 매 층의 차를 1촌(寸)으로 하면서 비례를 좁히고, 위는 1/3부터 점점 밖으로 넓히는 듯이 하되 매 층의 차를 3푼쯤 하면 성의 전체 모양이 가운데쯤이 약간 굽은 형태가되어 이 방법으로 쌓으면 몇 백년이 지났어도 한 곳도 무너짐이 없다고 하니, 이것은 반드시 본받을 만한 법임.

☞ 거중기의 힘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수원화성과 같이 방대한 공사를 2년 반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거중기등과 당시로선 최첨단 장비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인데요. 수원화성을 건설하기 전에 정조는 정약용에게 『도서집성』과 1627년 야소회(耶蘇會) 선교사인 슈레크와 명나라의 왕징이 저술한 『기기도설』을 내려 화성 건설에 필요한 기중법을 연구하라고 했고 정약용은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건설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거중기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힘으로 큰 물건을 들어올림으로써 인력을 절약할 수 있었고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인데요. 사람이 직접 밧줄로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움직일 때 잘못하여 손에서 밧줄을 놓치는 경우 물건이 떨어져 파괴되거나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느데 거중기는 이러한 위험을 예방할 수 있어 화성 건설에서는 작업능률을 4~5배로 높일 수 있었습니다.

화성 건설에는 모두 11대의 거중기가 사용되었구요 중앙 정부에서 샘플로 1대를 만들었고 수원 현지에서 이 샘플을 본 따 10대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거중기의 역할은 대단하여 수원화성 건설 기간을 당초 예상한 10년에서 단 2년으로 줄여 놓는 성과를 낳게됩니다.

  이러한 수원화성의 과학성 및 여러가치들로 인해 1970년대 복원된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어떤오후>

수원화성은 “동양과 서양의 축성 기술이 만난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이며  “유럽과 극동 아시아 성의 모양을 혼합한 특징을 갖고 있다”   - 유네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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