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6개월 사이에 일어난 의문의 죽음들?



  [이산]에서는 셋째 아이를 가진 의빈성씨가 장결병(간경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로는 셋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거나 그 직전에 사망한 것으로 실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정조 10년 - 1786년  9월 14일 >
 
의빈(宜嬪) 성씨(成氏)가 졸(卒)하였다. 하교하기를,
 
“의빈의 상례(喪禮)는 갑신년의 예에 따라 후정(後庭)의 1등의 예로 거행하라.”
 
하였다. 처음에 의빈이 임신하였을 때 약방 도제조 홍낙성이 호산청(護産廳)을 설치하자고 청하자, 출산할 달을 기다려 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병에 걸려 졸(卒)한 것이다. 임금이 매우 기대하고 있다가 그지없이 애석해 하고 슬퍼하였으며, 조정과 민간에서는 너나없이 나라의 근본을 걱정하였다.

홍낙성이 아뢰기를,
“5월 이후로 온 나라의 소망이 오직 여기에 달려 있었는데 또 이런 변을 당하였으니, 진실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병이 이상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부터 국사를 의탁할 데가 더욱 없게 되었다.”
하였다.
이는 대체로 의빈의 병 증세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무슨 빌미가 있는가 의심하였다고 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 얘기하지만 의빈 성씨와 문효세자의 죽음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데요. 물론 당시엔 어린아이가 홍역으로 죽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문효세자가 죽은지 넉 달만에 호산청(護産廳)을 바로 설치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했던 회임 중의 의빈마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은 실록에서 처럼 정조가 의심을 할 무언가가 있었던건 아닐까요?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죽음에 이어 또 한번 정조와 관련된 인물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같은 해 11월 상계군 담(常溪君 湛)이 의문사합니다. 원래 상계군은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아들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에 눈이 먼 홍국영에 의해 원빈 홍씨의 양자가 된, 명목상의 왕위 계승자였는데요. 기록을 보면 홍국영이 죽은 5년 뒤 음독자살을 했다고 나오지만 당시 유폐 중이었던 그가 이런 최악의 선택까지 했을 정황은 보이지 않습니다.

  문효세자가 죽기 1년 전인 정조 9년 노론의 거센 항의를 뿌리치고 아비인 사도세자가 잠들어있는 현륭원(顯隆園)에 능행(陵幸 : 임금이 능에 거둥함)을 단행하는 것을 계기로(이 또한 계획된 것이지만) 정조는 서서히 노론의 입지를 압박하는데요. 당연히 이런 점들이 노론에게는 훗날 자신들의 목숨마저 보장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문효세자와 의빈성씨, 그리고 상계군 이들 모두의 죽음은 불과 6개월 안에 일어난 일들이었으니 말이죠.
                                                                                                                                      <어떤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