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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이산] 정조가 개혁하려 했던 노비제 혁파는 과연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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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방영된 드라마 <이산>의 내용 중 편전 회의에서 "추쇄(도망친 노비를 쫓는 것)와 노비에 대한 수탈을 없애고 노비들이 일정 기간을 채우면 양인이 될 수 있도록 해 결국엔 노비들이 없어지게 하겠다”라는 노비제 폐지안을 들고나와 노론중신들의 반발을 일으키는데요.
 
이에 정순왕후의 사주를 받은 최석주(심환지로 추정되는 인물)는 정조에게 “사노비를 제외한 노비제도의 폐지는 받아들이겠다. 사노비 철폐를 철회해주면 중신들을 설득하겠다”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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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정조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전면적인 노비제 폐지는 물 건너가고 공노비제도만 없어지게 되는데요.  실제 역사에서 정조가 일궈낸 노비개혁의 성과는 어떠했을까요?
 
  신분제에 대한 큰 변화가 발생한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노비에서 양인으로, 양인에서 양반으로의 신분상승이 크게 일어 결국엔 노비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고 마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비추쇄도감을 설치하여 도망간 노비들 수십만 명을 색출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 제도에 폐단이 심하여 노비가 아닌 자를 노비로 만드는 등의 폐단이 심해져 정조는 이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계기로 정조의 노비개혁안은 본격적으로 두각 되어 노비폐지라는 파격적인 방안을 내놓게 되는데 노론 측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시점으로 보더라도 정조가 노비개혁안을 공론화 시킨 게 정조 22년(1798년)으로 보위에 오른 지 얼마되니 않는 현재 드라마의 시점과는 거리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정조가 승하한 게 2년 뒤인 1800년이므로 노비제 폐지는 첫걸음만 겨우 내디딘 채 정조 사망 후엔 모든게 백지화 되고 맙니다.

 또한, 앞서 얘기한 것처럼 공노비제 폐지도 정조사망 직후에 단행된 순조 때의 성과로 물론 정조가 펼친 개혁안의 일부라 말할 수도 있지만. 결과로 볼 땐 엄연히 순조시대의 업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하고픈 말...

  다시 말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노비들은 도망을 가거나 양천혼인(양인과의 혼인)또는 돈으로 신분을 사는 등의 방법을 통해 노비신분에서 벗어 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 합니다.

  따라서 노비신분의 폐지는 드라마적 긴장감을 배가시키기 위해 지어낸 정조의 번뜩이는 정치적 결과가 아닌 사회적 멸시에서 탈출하려는 피나는 노력과 경제적 영향력 상승 및 19세기 민중봉기 등으로 일궈낸 그들만의 화려한 업적임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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