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노론 세력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는데요. 그가 보위에 오른 후에도 그의 안위는 그다지 안전치 못하여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둘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당연히 정조의 가족들 또한 그 위협의 사정권 안에 들었던 건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다른 왕조에 비해 정조 또는 그의 가족이 사망한 후 유독 독살설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중 널리 알려진 것이 정조 독살설인데요. 정조가 승하할 당시 정순황후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독살설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도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지병악화로 인한 사망설이 지배적이기도 합니다.
☞ 문효세자의 죽음
정조가 왕이 된 후에도 노론세력의 견제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조가 계획하고 행했던 모든 개혁들이 그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노론세력은 천민출신의 의빈성씨와 정조 사이에서 태어난 원자를 두고 출신과 정통성을 문제 삼아 세자책봉을 반대하는데요. 이런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조는 기어이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데 바로 문효세자인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효세자는 1786년(정조10년) 5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고 마는데 그의 죽음을 두고 아래와 같은 몇 가지 가설들이 있습니다.
1. 홍역으로 인한 사망.
2. 원래 나약하여 병이 많았으며 노론의 사주를 받은 내의원들이 소홀했음.
3. 홍역이 걸렸으나 거의 완치될 무렵 독살당함.
2. 원래 나약하여 병이 많았으며 노론의 사주를 받은 내의원들이 소홀했음.
3. 홍역이 걸렸으나 거의 완치될 무렵 독살당함.
☞ 의빈성씨의 죽음
의빈성씨는 문효세자가 죽던 그해에 세 번째 아이를 낳다가 운명을 하고 마는데요. 이에 안타까운 정조는 "병이 이상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부터 국사를 의탁할 데가 더욱 없게 되었다"라며 그 상실감을 드러냈습니다.
의빈성씨의 사인 또한 명확하지 않지만 실록에 따르면 처음 의빈이 임신했을 때 신하가 호산청(護産廳, 후궁의 출산을 도와주는 기관)을 설치하자고 청하자 정조가 출산할 달을 기다려 하라고 명했던 만큼 건강상태가 원래 안 좋았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므로 그녀의 죽음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이는 대체로 의빈의 병 증세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무슨 빌미가 있는가 의심하였다."라고 정조실록에 기록된 바 정조또한 그녀의 죽음에 누군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한 듯합니다. <어떤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