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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잡학/역사

베토벤은 엘리제를 위해 작곡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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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39세 되던 1810년에 작곡한 곡이지만, 그가 죽은 40년 뒤에 '엘리제를 위하여.. 4월 27일, 추억을 기리며.베토벤'이라는 글과 함께 악보가 발견된 피아노 소품곡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만의 사랑의 아픔을 아름다운 음률로 승화시킨 곡 "엘리제를 위하여"는 작은 론도 형식으로 애수를 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론도: 반복되는 주제 사이에 다른 주제들이 들어가 있는 곡으로 소나타, 교향곡, 실내악곡의 끝악장에 자주 사용 됩니다.)                   

 베토벤으로부터 피아노 소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헌정 받은 여인은 "테레제 폰 마르파티"로 알려졌습니다. 테레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는데 베토벤은 한때 그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테레제는 베토벤이 가까이 지내던 빈의 대지주의 딸로서 빈 사교계에 널리 알려진 대단한 미인으로 베토벤 연구가인 "노르"에 의하면 머리와 눈동자가 흑갈색이고 콧날이 오똑하며 명랑한 성격의 아가씨였다고 하니 아마 베토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이끌리어 결혼을 신청했을 거라는 주장이 유력합니다.

 베토벤은 틈만 나면 테레제의 집을 방문했고 또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베토벤은 테레제와의 결혼을 위해 고향인 본에서 세례 증명서까지 떼어오게 하였으나 그의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때 베토벤은 40세, 테레제는 아직 17세의 젊은 나이로 23세라는 나이 차이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그 당시 베토벤의 생활이 별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것이 결혼에서의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결국, 테레제에 대한 사랑은 베토벤의 일방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며 이 곡은 그가 40세인 1810년 봄에 테레제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베토벤의 사후 그가 보낸 편지 3통이 공개되었는데 그곳에는 ‘불멸의 연인에게’라고되어 있을 뿐 수신인도 날짜도 분명하지 않아 진정 누구를 위해 쓰였는지 현재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영화 소제로도 자주 사용될 만큼 아직도 여러 여성이 ‘불멸의 연인’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월광의 곡"을 바친 줄리에타 귀차르디를, 어떤 사람은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를 강력히 내세우는가 하면, 최근에는 요제프 다임이 ‘불멸의 연인’이라는 말이 유력하지만, 그 어느 것도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불멸의 연인으로는 가수인 아말리아 제바르트, 피아니스트인 도로테아 에르테만,그리고 베토벤의 열렬한 숭배자 프란츠 폰 브렌타노의 아내인 안토니에와 같은 여성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죠.

 베토벤이 "엘리제를 위하여"를 바친 "테레제 폰 마르파티"도 그 후보자의 유력한 사람이었는데 신분상의 상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결혼으로 테레제는 헝가리의 귀족과 결혼했습니다. 테레제가 결혼한 후에도 베토벤은 마르파티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는데요. 어느 날 마르파티가를 방문한 그는 오선지에 막티슨의 시와 거기에 붙인 곡을 적어 넣고, ‘나의 사랑하는 테레제에게’라는 말을 놓고 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어 테레제가 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었던 여성의 한 사람이었던 것만은 확실한 거 같습니다.

 평생을 통해 베토벤은 많은 여인과 교류를 갖고 애정을 느꼈지만 끝내 그 어떤 여인과도 이룰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음악가라는 신분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베토벤 스스로 너무도 자신을 안으로 묶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의 대곡에서도 엿볼 수 없는 그의 맨 얼굴과 같은 것이 드러나 있는 귀여운 소곡으로 여성에 대한 부드러운 마음의 세심함이 곡의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제목인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의 난폭한 필적을 잘못 읽은 것으로, 원래는 "테레제를 위하여"라는 제목이 옳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떤오후>




[출처 : 네이버 지식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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