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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동이는 왜 중전이 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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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방송된 MBC 드라마 '동이'에서는 숙종의 파격적인 조치로 갑자기 후궁의 자리에 오르게 된 동이(한효주 분)의 모습이 방영되었습니다.

 이는 인현왕후의 폐위와 관련, 내수사의 비리 증험을 가지고 입궐한 동이를 둘러싸고 위기의식을 느낀 남인들과 장옥정이 세밀한 조사를 위해 동이를 내어달라고 임금을 향해 호소한데서 비롯되었는데요.

 이른감이 있지만 숙종의 조치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승은상궁으로 또 한번 신분상승을 하게되는 동이. 그녀가 바로 실제 역사 속 숙종이 마지막까지 가장 총애했던 여인이며 영조의 어머니이기도 한 숙빈 최씨입니다.


 숙빈 최씨는 미천한 출생으로 그녀에 대한 기록은 숙종에 의해 후궁이 되면서부터 확인되고 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1670년(현종 11) 11월 최효원의 딸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랐는데,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이 영광군수로 발령을 받고 당시 8살이던 인현왕후와 함께 부임하러 가는 도중 거지모습의 한 어린 소녀를 거두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드라마 속 '동이'입니다.

 이후 민유중에 의해 인현왕후와 함께 자라던 동이는 7살 되던 때에 궁궐에 들어갑니다.  무수리로 궁에 입궐한 궁녀 동이는 인현왕후가 숙종의 제1계비로 뽑혀 궁에 들어오자  그녀를 보필하게 되고, 8년 뒤 인현왕후가 폐출당할 때 그녀를 위한 기도를 올리다가 숙종에게 발견되어 성은을 입게 되고, 곧이어 숙원·숙의·귀인을 거쳐 숙빈이라는 정1품의 빈까지 오르게 됩니다.

 아무튼, 숙빈 최씨가 무수리로서 왕의 승은을 받은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많은 흔 경우의 궁녀들이 성은을 받고 후궁까지 되었으나 이후에 왕에게서 멀어져 단지 후궁의 생을 외로이 살다간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숙빈최씨를 향한 숙종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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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숙종의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같은 궁인 출신에서 내명부 최고의 자리인 왕비까지 오른  희빈 장씨처럼 중전은 되지 못 했는데요. 그 이유는 숙종이 장희빈의 일이 재발할까 염려되어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현왕후가 죽은 뒤에도 숙빈 최씨는 왕후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숙빈 최씨는 왕비에 오르지는 못하였으나 속종에게서는 왕비의 지위를 초월하는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총애는 숙빈이 숙빈이 영잉군(훗날 영조)을 출산하자 극에 달했는데요. 숙종은 연잉군의 탄생을 크게 기뻐하며 호산청(護産廳, 왕비 미만의 후궁들이 출산할 때 출산을 돕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의 관계자들을 푸짐하게 포상하게 되는데 여기에 내구마(조선 시대에, 내사복시에서 기르던 말. 임금이 거둥할 때에 쓴다)를 하사합니다.

숙종이 노론·소론의 당쟁을 이용하여 양 난 이래 손상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수차례의 환국으로 조정을 피로 물들인 인물이었으며, 왕비인 인현왕후를 매몰차게 내치고 왕비로 삼은 장희빈마저 나중에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정도로 잔혹하고 냉철한 인물임을 생각해보면 속종이 숙빈 최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한 번 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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