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첫 방영 예정인 KBS 바람의 나라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 한 명의 고구려 영웅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인데요. 드라마 감상에 앞서 드라마적 허구로 재탄생된 등장인물들과 실제 역사 속 배경을 미리 언급함으로써 시청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포스팅해봅니다.
먼저 유리왕을 중심으로한 가계도를 살펴봅니다.
그림처럼 동명성제(추모 또는 주몽)의 뒤를 이어 유리왕은 고구려의 2대 왕이 되었으며 이후 송양의 두 딸들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얻게 됩니다. 여기서 송양은 MBC "주몽"에도 등장했던 비류국의 왕으로 주몽에게 패하여 고구려의 신하가 된 인물입니다.
주몽이 연씨(소서노)와 혼인한 것 처럼 유리왕이 송양의 두 딸과 차례로 혼인한 것 또한 정략적인 면이 강하다 판단됩니다. 아버지 주몽에게서 왕위를 물려 받긴 했으나 개국공신들이 실세를 장악했던 당시로선 송양과의 이른바 전략적 제휴를 통해 다물도를 다스리던 송양의 군사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송양의 두딸외에 화희와 차희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먼저 유리왕의 자식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 유리왕과 대립하다 자살한 장남, 도절.
도절이 어린시절 고구려는 금와왕의 아들 "대소"가 왕으로 있는 부여로 부터 심한 견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주몽과 달리 유리왕은 전쟁을 기피하고 평화주의 노선을 고집하던 터라 부여가 제안한 인질교환을 통한 화친제의를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유리왕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장남 도절(당시 12세로 추정)을 인질로 보내려 했으나 신하들의 강한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부여와의 약조를 어기고 마는데요. 이를 빌미로 "대소"가 이끄는 부여의 5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11월 폭설로 인해 부여군은 퇴각합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부여와의 대립은 극에 달하게 되죠.
몇 년 후, 부여와의 화친을 계속 고집했던 유리는 대표 강경론자였던 탁리와 사비를 모함에 빠뜨려 죽인 후 다시금 부여와의 화친을 맺으려 하지만 이제는 이미 성인이 된 장남 도절과의 마찰이 발생하고 마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리왕의 신임을 잃어버린 도절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 아버지로부터 견제당한 둘째, 해명.
해명은 유리왕의 차남으로 그 용맹함이 대단하여 주변국에 그를 모르는 자가 없었다 합니다. 특히 힘이 장사로 이 소문을 접한 황룡국의 왕이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위해 튼튼한 활을 선물로 보내는데 해명은 사신이 보는 앞에서 그만 활을 부러뜨리고 맙니다.
급기야 이 사건은 외교적 마찰로 확대되었으며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유리왕은 아들에게 자결하라 명했고 20세의 젊은 나이에 해명 또한 생을 마감합니다.
(이 당시 자신에게 등을 돌린 졸본 민심으로 말미암아 유리왕은 졸본에서 위나암으로 천도를 감행했는데요. 이 상황에서 해명은 졸본에 계속 남아 그 곳의 민심을 기반으로 강한 지지세력을 형성했던 터라 위의 외교적 마찰을 빌미로 도절에 이어 태자가 된 해명을 의도적으로 죽인 거라는 해석에 지금은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 대무신왕, 무휼.
예고편에서 - 형제와 부모 그리고 자식을 죽일 운명이라는 신탁에 의해 고구려의 2대 ‘유리왕’의 자손이라는 신분을 모른 채, 벽화공으로 키워진다.- 라는 설정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유리의 세째 아들인 무휼은 어릴 때부터 그 총명함이 남달라 6세의 어린나이에 이미 부여의 사신이 유리왕을 꾸짓는 것을 보고 그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았다합니다. 이같은 총명함에 무휼은 15세의 어린나이에 고구려 제 3대왕에 등극하게 되는데요. 바로 이 분이 대소왕이 지배하던 부여를 정벌하고 고구려를 침공한 한나라를 막아낸 대무신왕입니다.
☞ 유리왕의 최후를 앞당긴 넷째, 여진
유리왕은 넷째인 여진을 다른 아들들보다 각별히 아꼈다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여진은 익사를 당한채 발견되고 맙니다. 여진의 잃은 유리왕의 충격은 상상를 초월해서 결국 아들이 죽은지 반년뒤 유리왕은 사망하게 됩니다.
<어떤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