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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바람의 화원]신윤복이 그린 여성의 완성판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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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는 삼원삼재(三園三齋)라고 불리는 대표화가가 있습니다.

삼원(三園)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으로 직업 화가, 전문 화가, 중인 신분이었으며 삼재(三齋)는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으로 선비 화가, 문인 화가, 양반 신분입니다.

 여기서 바람의 화원에 등장하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긍재 김득신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홍도는 정조시대의 도화서 화원으로 일상적이고 소박한 서민 생활과 당시 사회상을 주로 그렸으며 그의 그림은 배경을 생략한 간결하고 소탈한 필치를 구사한 남성적인 맛을 풍깁니다.

반면, 신윤복은 순조시대의 도화서 화원으로 김홍도와 달리 대상을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로 그렸으며,  빨강, 파랑, 노랑의 전통 3원색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색을 표현하여 다소 파격적인 화려한 화풍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화풍 만큼 소재도 파격적이어서 당시의 환락 적이고 다분히 퇴폐적이 었던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양반과 기생, 부인을 주인공으로 한 속된 그림으로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김홍도보다 13살 아래인 신윤복은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창안하여 김홍도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조선후기 풍속화의 대가가 됩니다.

 따라서 당시의 잣대로 볼 때 김홍도가 주류, 신윤복은 비주류로 철저히 외면을 받았던 탓에 그의 일생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고 로맨틱한 소재와 섬세한 표현력이 다분히 여성적인 관점에서 그린 거라는 오해마저 일으키기에 충분하니 "소설 바람의 화원"처럼 신윤복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나오게 된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이상 종영된 바람의 화원에 등장한 주인공의 면면을 다시 한번 언급해 보았으며 본론으로 들어가서 마지막회에 신윤복이 남긴 "미인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미인도는 신윤복이 그렸던 풍속화 속 여인들의 완성형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작품으로 신윤복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관능미를 마음껏 드러낸 옷을 입은 그림 왼쪽에 “자유분방한 여인의 가슴 속에 감추어진 춘의(春意)를 능숙한 붓끝으로 전신(傳神)하였다”라고 칠언시(七言詩)가 적혀 있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으니 아마도 신윤복이 사모하던 여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 이 그림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 미인상이 그 시대의 의상과 함께 잘 묘사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신윤복의 미인도처럼 몸매를 과장되게 강조하는 쪽으로 복식이 변화하는데요. 팔을 구부리면 터질 지경이며 심하면 팔이 부어 소매를 찢어야만 옷을 벗을 수 있고 너무 꽉 끼어서 가슴이 드러날 지경이라 이것을 가리기 위해 허리가리개가 넓고 그 아래로 허리 부분은 한 겹이고 치마는 여러 겹인 무지기를 입어 엉덩이를 부풀려 보다 관능적으로 보이게 입었습니다. 여기에 치마 아래로 살짝 드러난 외씨버선으로 화려한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러한 조선후기 여성 복식은 건강까지 해칠 정도로 옷으로서의 기능보다는 관능미를 중시했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복장은 이 옷을 입었던 여성들이 만들어낸 유행이었기보다는 이를 눈요기로 즐기던 조선 후기의 남성들로 인해 조장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머리에 한 가채 또한 과한 장식으로 무겁기 짝이 없었는데요 어느집 며느리가 시아버지 맞으려고 갑자기 일어서다 목이 부러져 죽은 일도 있다 하니 과도한 관능미를 표현한 당시 복식은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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