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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속 역사이야기

[대왕세종] 평도전은 실존인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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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전 드라마 초반에서 왜인 첩자로 처음등장했지만 실제 첩자는 아니고  태종때 조선에 귀화한 일본사람으로1407년 궁중에 진상되는 고기, 소금등을 관장하는 사재감(司宰監)의 원외사재소감이라는 벼슬을 받았고 뒤에 정3품인 상호군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또는, 대마도주 종정무(宗貞茂)의 명으로 조선에 들어와 관직을 재수받고 일을 배우던 인물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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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도전은 왜선(倭船)을 만들어 한강에서 조선 병선과 그 속력의 빠르기를 비교해 보이기도 하고, 대마도를 오가며 조선국왕의 의중을 전하고 대마도주의 답변을 받아오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평도전입장에서는 동족인 왜구를 섬멸하는 일에 적극적일 수는 없었습니다. 평도전에게는 아들 평망고(平望古)가 있었는데 조선이 대마도 정벌에 나서기 전 삼남에 거주 또는 숨어있던 왜인들중 요주의 인물들 21명을 처단했는데 이때 평망고도 죽임을 당합니다. (아비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 죽는 드라마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부분입니다.)  이 일로 인해 평망고는 명령을 어긴 죄로, 평도전과 그 가족들은 대마도주와 서로 내통하였다는 죄로 10여명의 가족들은 평양으로 안치(安置)되고 맙니다.

※ 안치(安置) : 먼 곳에 보내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주거를 제한하던 일. 또는 그런 형벌.
 
1426년(세종 8) 12월에 예조에서 임금에게 아뢰길  “평안도 양덕(陽德)에 안치한 왜인 평도전은 생계가 어려워서 의복과 말 안장을 전당잡히거나 팔아서 조석 끼니를 이으며 그 딸은 나이가 장성했는데도 시집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세종은 그곳 수령으로 하여금 비용을 대어 평도전의 딸을 시집보내게 합니다.

또한, 1434년(세종 16)에는 우의정 최윤덕(崔閏德)이 아뢰기를 “평도전이 양덕에 몸을 붙이고 있사온데 곤궁 막심하오니 청하건대 그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였으나 임금은 반대의견을 내놓은 도승지 안숭선(安崇善)의 말을 옳게 여겨 석방하지 않았으니 드라마에서 "당신 또한 소중한 내 나라 백성이라"며 귀이 여기던 평도전의 조선생활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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