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세종]의 등장인물 중 가장 왜곡이 심한 인물은 아마 장영실인 듯합니다. 관노 출신인 탓에 관직을 얻기 전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일정부분 허용하다 하더라도 드라마 속의 왜곡은 지나치지 않나 싶네요.
또한, 드라마 초기 상전인 한영로의 딸 다연(가상인물)과의 애정구도와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반체제 집단에 몸을 담는 등의 설정은 개국 초기 어수선한 상황이 하급 계층들에게는 기회의 시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무튼, 장영실은 이제 최윤덕, 이천, 최해산 등과 더불어 세종이 가장 아끼는 인물의 반열에 올라 최해산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 들어가 천문학 비밀을 알아내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여기서 예전에 명나라의 볼모로 잡혀가 지금은 황제의 후궁이 된 옛사랑 다연의 도움을 받는 설정은 너무나(?) 극적이어서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1423년(세종 5년) 왕의 특명으로 발탁,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어난 장영실은 세종대왕이 발탁한 인물이 아닌 태종(이방원)에 의해서 발탁된 인물입니다.
*상의원:조선시대 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재화(財貨)·금·보화 등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던 관청
<세종실록> 세종 15년(1433) 9월 16일자 기록에 다음과 같이 장영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안승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黃喜)와 좌의정 맹사성(孟思誠)에게 의논하기를, "행사직(行司直)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디 원(元)나라 소주·항주지역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비해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세종장헌대왕실록」권 61
위에서처럼 장영실의 재주를 귀하게 여겨 장영실을 궁궐로 들인 인물이 태종임을 알 수 있는데요.
장영실의 이름이 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종 7년(1425년)으로 이때 이미 직함이 "사직(司直)"으로 병조에 속한 오위(五衛)의 정5품관입니다. 따라서,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官奴)로 있다가 이렇게 높이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태종이 일찍이 그를 발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대왕세종]에서 장영실에 관한 부분이 왜곡이 많은 이유는 아마 앞서 얘기한 것처럼 관노출신으로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었던 탓과 드라마 상의 극적인 설정을 위해 세종대왕과의 밀접한 관계를 확대 생산하려 한 작가의 의도적인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