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세종] 41회에 새롭게 등장한 두 인물이 있습니다. 지신사(지금의 비서실장) 조말생이 박은에게 집현전에 박은의 사람들을 심어놓아야 한다며 두 사람을 소개 하는데 학문엔 소질이 없으나 영악하여 간자로 적합한 김문(金汶)이며 이를 눈치 못 채게 학문이 뛰어나지만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드라마에서는 아예 바보같은) 신장(申檣)이라는 사람을 집현전에 배치하는데요. 이들은 실존인물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에서는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네요.
집현전학자 김문(金汶)과 신장(申檣)을 소개합니다.
☞ 김문(金汶)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출생년도는 알려진 바 없으며 어머니가 무당이었다 합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증진하여, 1420년(세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35년 문명(文名)으로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에 뽑히었고, 이듬해 집현전부교리, 그 이듬해 집현전직제학으로 승진하였으니 드라마와는 달리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지닌(특히 사학(史學)에 정통함) 인물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김문(金汶)을 악역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한 듯 합니다.
2. 1446년 세종이 불경(佛經)을 간행하려 하자, 왕실의 불교 숭상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정창손이 좌천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때 정창손의 방면을 청하는 집현전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여 비난을 받음.
따라서 이 두가지 이유는 그가 지닌 가치관의 문제이지 원래부터 사람의 됨됨이 악했던건 아닌 걸로 판단 되며 드라마의 설정 상 본의 아니게 왜곡된 듯 합니다. 또한, 이 사람이 집현전에 들어온 시기와 드라마에서 간자 역할을 했던 "강상인의 옥"이 발생한 시기와도 차이가 있습니다.(후손들이 알면 기분나쁠 듯)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 2년 후(1448년) 사서(四書)를 번역하는 사업을 주관한 공으로 승차가 예상되었으나 갑자기 죽었는데 사인은 중풍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신장(申檣)
1382(우왕 8)∼1433(세종 15)에 활동했던 인물로 유명한 신숙주(申叔舟)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상서녹사(尙書錄事)가 되었고 다음 예조정랑 겸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춘추관동지사로서 "정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후에 중군도총부총제(中軍都總府總制)·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을 거쳐 공조좌참판에 이르렀으며 오랫동안 대제학을 맡아 당시 유학에 통달한 권위 있는 학자로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니 [대왕세종]의 덜 떨어진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네요. <어떤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