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은 의적 홍길동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방영후 많은 시청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홍길동의 이야기와 너무나 달랐던 것인데요.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연산군 집권하던 때고, 그가 양반의 서얼이 아닌 노비의 아들로 등장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던 허균의 '홍길동전'과 180도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는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조선왕조실록에 실제로 등장하는 실존인물 홍길동을 소재로 드라마로 만들었기 떄문입니다. 역사속에 홍길동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500년 입니다.* 1500년 10월 22일 (연산 6년) 영의정 한치형(韓致亨)·좌의정 성준(成俊)·우의정 이극균(李克..
황희(黃喜, 1363~1452) 고려의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가 30세(1392)되던 해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72현과 함께 두문동에 은거했으나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학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선 개국을 반대한 이력으로 빛을 보지 못하다 태종이 왕이된 후 형조, 예조, 병조, 이조 의 정랑을 거쳐 도승지의 전신인 지신사가 된 43세경부터 자기 소신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실록에도 '황희는 공신은 아니지만 공신 대접을 하였고,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반드시 불러서 접견하였고, 하루도 좌우를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할 정도로 태종의 신뢰는 대단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1418년에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에 반대하다가 결국 교하 지방(지금의 경기도 ..
천추태후의 역사왜곡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요. 강조가 발해인이라는 설정에 김치양이 신라인이라는 거도 모자라 이제는 마의태자의 손자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팩션드라마가 아닌 현존하는 유일한 대하사극이라며 선전하는 '천추태후'에서 이러한 역사왜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이유는 극적인 설정을 통한 시청율 높이기의 수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천추태후'의 중간에 가끔 해설자가 해당 에피소드에 대한 역사절 배경을 소개하는데 이것 또한 '천추태후'라는 사극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제작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드라마를 피해서 그나마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사극들로 역사의 정체성 마져 흔들릴 수도 있는 이런 사극들의 위험한 역사왜..
태종 4년 11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된 양녕대군은 폐세자가 된 후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기행을 일삼았는데요. 이 수많은 기행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복잡한 여자관계였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상왕의 첩 초궁장을 건드려 문제가 되었지만 상왕의 기생인 줄 몰랐다는 양녕의 변명이 통하여 위기를 모면했죠.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곽선의 첩 어리와의 스캔들로 인해 양녕은 결국 폐세자가 되고 맙니다. 기생의 신분이었던 초궁장과는 달리 어리는 유부녀의 신분이었기에 세자의 신분으로 감행된 유부녀와의 간통은 왕실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리는 큰 죄임에 분명했던 것입니다. 양녕은 곽선의 양자를 위협해서 어리를 납치하려 했었는데 김한로(양녕의 장인)가 이사실을 알고도 양녕을 자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여색을 탐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