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승은을 입은 송연이가 바로 빈(嬪)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예를 따라 왕의 적처는 후(后)라 하지 않고, 격하하여 비(妃)라 하고, 후궁들에게는 내명부의 벼슬을 주어 숙원(淑媛:종4품)·소원(昭媛:정4품)·숙용(淑容:종3품)·소용(昭容:정3품)·숙의(淑儀:종2품)·소의(昭儀:정2품)·귀인(貴人:종1품)의 순으로 올리고, 후궁의 으뜸은 빈(嬪:정1품)이라 하였습니다. 이 빈(嬪)에는 처음부터 왕의 후사(後嗣)를 위하여 왕비나 세자빈과 같이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하여 들어오는 경우와, 궁녀로 들어왔다가 왕의 총애를 입어 왕자를 낳고 궁녀에서 소용·숙의 등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원빈이나 화빈과는 달리 송연이가 승은을 입고서도 내명부의 벼슬을 받지 못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장희빈(張禧嬪) 등을 포함하여 역대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