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스승으로 모시던 채제공은 정조가 왕이 되기 전부터 승하하기까지 정조가 개혁하려 했던 거의 모든 국책들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에서는 홍국영만 두드러진 채 채제공은 정조의 측근인사 정도로만 묘사가 되어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시대의 정치인들인 본받을만한 활약을 펼쳤던 채제공(蔡濟恭)을 소개합니다. 1720년 중추부지사 채응일(蔡膺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학문에 열중하여 15세에 향시에 합격했고 23세에 과거에 합격해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요 그의 아버지가 두 고을에서 현감을 지냈으나 워낙 청렴했던 탓에 ‘전해오는 재산이라고는 오직 네 벽만 있는 집뿐이며 밥 짓는 연기도 주방에서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 라고 채제공의 시문집인 '번암집'에서 밝..
얼마 전 정조의 친위부대였던 숙위소(宿衛所)와 장용영(壯勇營)에 대해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장용영의 전신인 장용위(壯勇衛)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 포스트는 문답식으로 꾸며봅니다. ☞ 질문 1) 무과를 통해 2,000명의 대규모 인원을 선발한 이유는? 정조는 1785년(정조 9년) 그의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존호(尊號)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바꾸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경과(慶科: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이를 기념하고자 보이던 과거)를 보여 무과(武科)에서 무려 2,000명을 합격시킵니다. 이는 장헌세자를 추모한다는 뜻도 있겠지마는 상대적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초석을 만들기 위함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데요. 이듬해 2월 홍복영(洪福榮)의 역모사건이 일어난..
정조가 보위에 오르기 전 세손 시절엔 익위사(翊衛司)란 조직이 세손의 안위를 살폈는데 드라마에선 이 익위사의 관원들이 정조가 왕이 된 후 홍국영의 건의로 설치된 숙위소에 고스란히 합류하게 되죠. 영조시대에는 세손을 지키는 익위사외에 영조를 호위하는 군사조직이 별도로 있었으니 바로 용호영(龍虎營)입니다. ☞ 용호영 (龍虎營) 전신이었던 금군은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의 소위 3위가 있었는데, 효종 3년에 내삼청을 설치하고 금군을 맡아 지휘하게 하였다가 영조 31년(1755)에 용호영(龍虎營)으로 개명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영조가 승하한 후 정조가 보위에 오르는데 내금위장의 역할이 컸었는데 이때는 이미 내금위가 용호영으로 바뀌었으니 조금 이상하네요. 아무튼, 용호영은 병조판서가 책임자로 있었으며 인원은 1,..
사도세자는 혜경궁 홍씨에게서 의소세자(요절)와 정조를, 숙빈 임씨에게서 은언군과 은신군을, 경빈 박씨에게서 은전군을 생산했으므로 은언군은 정조의 이복동생이 됩니다. 따라서 은언군의 아들인 이담은 정조의 조카가 되구요. 은언군은 욕심이 많아 시전 상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나중엔 시전 상인에게 빚을 진 것을 할아버지인 영조가 알고 유배를 당하기도 했던 인물이었으며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 노론 벽파를 조종하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세손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세손으로 낙점했던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드라마에서는 홍국영이 죽은 누이(원빈)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다는 핑계로 은언군의 장자인 담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는 데 성공하는데요. 원빈의 양자는 결국 정조의 양자이므로 정조는..
홍국영은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등이 포진되어있는 외척세력 풍산홍씨의 일문이었으나 그의 아비가 그다지 정치에 관심이 없던 터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드라마 초반에서 보이는 홍국영의 행태처럼 그의 청년기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 탓에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웠을 테니 과거급제도 힘겨워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실제로 문헌에는 그가 지닌 지적 역량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시강원 설서의 초라한 관직을 벗어나기엔 너무나 내세울 것 없었던 그가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 서게 되는데요. 바로 정조와의 만남입니다. 당시 정조는 홍인한, 정후겸이 포진된 벽파세력으로 부터 목숨까지 위협을 받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시절로 홍국영의 충성심과 비범함은 자신을 막..
어제 방영된 드라마 의 내용 중 편전 회의에서 "추쇄(도망친 노비를 쫓는 것)와 노비에 대한 수탈을 없애고 노비들이 일정 기간을 채우면 양인이 될 수 있도록 해 결국엔 노비들이 없어지게 하겠다”라는 노비제 폐지안을 들고나와 노론중신들의 반발을 일으키는데요. 이에 정순왕후의 사주를 받은 최석주(심환지로 추정되는 인물)는 정조에게 “사노비를 제외한 노비제도의 폐지는 받아들이겠다. 사노비 철폐를 철회해주면 중신들을 설득하겠다”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만일 정조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전면적인 노비제 폐지는 물 건너가고 공노비제도만 없어지게 되는데요. 실제 역사에서 정조가 일궈낸 노비개혁의 성과는 어떠했을까요? 신분제에 대한 큰 변화가 발생한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노비에서 양인으로, 양인에서 양반으로..
어제 방영된 드라마 "이산"에서 정순왕후가 홍국영과 독대를 하며 노론 벽파의 수장인 장태우 대감(이재용 분)의 퇴출을 놓고 이른바 빅딜을 제안하는데요. 과연 장태우 대감은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드라마 속에서 노론 벽파의 수장으로 영조때 유배당했다 정조때에 재기용되는 설정으로 추리해볼 때 아마 좌의정 김종수(金鍾秀, 1728~1799)일 가능성이 큰 듯합니다. 김종수는 정조가 세손 시절 때부터 정조에게 큰 영향을 준 스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보위에 오른 후엔 드라마에서처럼 정조와는 모든 면에서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인물인데요. 정조가 김종수를 다시 불러들일때 '내 곁에서 항상 쓴소리를 해달라'며 당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처럼 김종수는 규장각 설립, 화성 축조, 탕평정책등 정조가 펼치려 했던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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