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왕의 세째 아들인 무휼은 어릴 때부터 그 총명함이 남달라 6세의 어린나이에 이미 부여의 사신이 유리왕을 꾸짓는 것을 보고 그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았다합니다. 이같은 총명함에 무휼은 15세의 어린나이에 고구려 제 3대왕에 등극하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역시를 통틀어 신왕(神王)이란 호칭을 얻은 유일한 군주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일대기를 소개합니다. 14년(유리왕 33) 11세로 태자(太子)로 책봉되어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음 18년 유리왕이 죽은 뒤 고구려 제 3대 황제가 됨 (15세) 21년 12월 부여 선제공격. 22년 2월 괴유 장군이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임. (하지만 자만심으로 인한 무리한 진격으로 전쟁에서는 패함) - 대소왕의 막내 동생은 부여를 빠져나와 갈사국(曷思國)을 건..
12/10 방영된 "바람의 나라" 28회에서는 반란을 피해 국내성을 빠져나가다 큰 부상을 당하게 된 여진 왕자가 죽음을 맞는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역사 속의 여진 왕자는 드라마와는 달리 갑작스레 강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죠. 다음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여진 왕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름 4월 왕의 아들 여진이 물에 빠져 죽었다. 왕이 애통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시신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는데, 뒤에 비류 사람 제수가 여진의 시신을 찾았다. 그 소식을 듣고 곧 예를 갖추어 왕골령에 장사지내고 제수에게 금 10근과 밭 10경을 주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37년(A.D.18) 조) 넷째 왕자 여진은 유리왕이 가장 총애하던 인물로 이 사건의 충격으로 유리왕의 건강은 급격히 ..
12/10 방영된 바람의 나라 27회에서는 배극이 반란을 일으켜 유리왕을 인질로 하여 무휼에게 투항을 권하는데요. 이에 반란군 군영에 갇혀 있던 유리왕은 자신의 존재가 무휼에게 큰 부담이 될 것임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결심을 해 극의 긴장감을 한층 높였습니다. KBS "바람의 나라"에서 보여주는 고구려 2대 유리왕의 모습과는 달리 동부여 대소왕의 막강한 영향력에 전전긍긍하다 전쟁을 피하고자 태자 도절을 볼모로 보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나약한 모습과 화희(禾姬)와 치희(雉姬)의 두 여인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미련함도 모자라 둘째 해명태자를 죽게 만든 원인 제공자로 보는 이도 더러 있습니다. 이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드라마상의 모습과는 달리 참으로 인간적인 냄새가 풍겼던 유리왕은..
드라마에서의 유리왕은 냉철함과 동시에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동부여의 막강한 영향력에 전전긍긍하다 전쟁을 피하고자 태자 도절을 볼모로 보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나약한 모습과 화희(禾姬)와 치희(雉姬)의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미련함도 모자라 곧은 신하의 바른 소리를 용납지 못했던 치졸한(?) 인물로 평하는 이도 더러 있습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장남 도절이 자결한 후 태자가 된 둘째 해명태자는 그 용맹함과 비범함이 남달라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왕재의 길을 닦으며 성장하고 있었는데요. 졸본의 민심을 얻지 못하고 동부여의 견제를 피해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한 뒤에도 해명은 졸본에 계속 남아 소서노의 잔존세력들과 졸본 백성을 아우르며 지지기반을 키우고..
해모수는 북부여의 왕이자 천제의 아들(天子)로 어느 날 강가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유인하여 주몽을 갖게 한 후 사라집니다. 유화를 강제로 취한 해모수는 이때 이미 늙은 몸으로 그에게는 해부루라는 아들과 금와라는 손자까지 있었습니다. 또한, 금와는 해부루의 뒤를 이어 동부여의 왕위를 물려받은 상태였습니다. 딸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하백은 유화를 쫓아버리는데요. 쫓겨난 유화는 아이의 아버지인 해모수를 찾아 부여로 향하는 도중 위험한 지경에서 뜻밖에 금와를 만나 동부여로 가서 자신의 손자뻘 되는 금와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여기서 낳은 아들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입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에 능했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주몽"이라는 이름도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하죠. 이런 주몽의 능..
어제 방영된 [바람의 나라] 첫 회에서 고구려의 노예상 마황(김상호 분)이 유리왕의 애정행각을 비꼬며 시를 하나 읊었는데요. 훨훨나는 저 꾀꼬리 암수정답게 노니는데 외로울사 이 내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흔히 황조가(黃鳥歌)로 불리는 이 가요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황후 송씨가 죽자 유리왕은 두 명의 여인을 후궁으로 들이는데 바로 화희(禾姬)와 치희(雉姬)입니다. 화희(禾姬)는 송씨와 같이 유리왕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선택한 여인으로 그녀의 집안은 당연히 당시 최고의 명분가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치희(雉姬)는 천한 신분이나 빼어난 미모로 유리왕의 맘에 들어 선택된 여인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입궁한 화희(禾姬)와 치희(雉姬) 잦은 다툼으로 말미암아 결국 파국을 맞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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